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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이야기83

“아빠 입술은 엄마 거야”라는 말에 딸내미 반응 우리 집에는 규칙이 하나 있답니다. 결혼하고 나서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누가 먼저 잠자리에 눕던 나중에 누운 사람이 먼저 누운 사람에게 뽀뽀를 해야 합니다. 낮에 무슨 일이 있었던 간에(설령 부부싸움을 했더라도) 그것은 꼭 하고 넘어가야 할 필수 행동양식입니다. 한 쪽이 먼저 잠들어 있는 경우만 빼고 매일 그렇게 한 뒤에야 잠을 잡니다. 우리 똥강아지가 태어난 뒤에도 늘 ‘굿나잇 뽀뽀’를 합니다. 똥강아지가 어릴 땐 엄마, 아빠가 뽀뽀를 하건 말건 상관을 않더니 요샌 자기도 하겠다며 입술을 쭉 들이밉니다. 어쩔 땐 셋이서 한 곳에 입술을 모아 ‘쪽’ 부딪히기도 한답니다. 그건 뭐, 뽀뽀라고 하기도 뭣하고 입술 박치기에 가깝습니다. 며칠 전 밤이었어요. 저랑 똥강아지는 침대에 앉아 있었고 남편이 뽀뽀.. 2010. 8. 11.
개그콘서트를 끝낸 개그맨들이 참 부러운 이유 미국에 온 다음에는 통 개그콘서트를 볼 수가 없지만 서울서 그것을 한창 즐겨볼 때 나는 개그맨들의 개그보다 늘 마지막 장면에 시선을 멈추곤 했다. 프로그램을 끝낸 출연자들이 모두 나와 꽃을 던지며 꾸벅 인사하던 모습 말이다. 방송을 만든 이들의 이름이 빠르게 자막으로 처리되어 아래에서 위로 훑고 가는 사이, 환하게 웃던 그들을 볼 때마다 나는 항상 부러웠다. 나도 공연 한번 해봤으면. 무대에 올랐으면……. 사진출처: 유나공장 [인생의 행복찾기] http://unafac.tistory.com 물론 TV방영 프로그램이다 보니 유명세에 따라 어떤 이는 기분이 째질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이번만큼은 편집되지 않기를 고대하며 심기가 편치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그맨으로서 무대에 설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 밑바.. 2010. 8. 6.
우리집 덧밭에서 자라는 소중한 생명 저희 집 뒤뜰에는 손바닥만 한 텃밭이 있답니다. 전에 살던 사람이 깨, 고추 등을 길렀었는데 우리가 들어오면서 그대로 물려받았지요. 올 봄 동네 공원 한 구석에 놓인 거름을 날라다 몇 번 뿌린 것 말고는 별달리 한 것이 없는데도 햇볕이 좋아서 그런지 농작물들은 참 잘만 자랍니다. 2010년 5월 25일 텃밭 풍경 2010년 7월 1일 텃밭 풍경 2010년 8월 2일 텃밭 풍경, 지난 5월에 비하면 깻잎 키가 무척 많이 자랐지요? 겨우내 꽁꽁 얼었던 땅을 뚫고 새 순이 돋아나 키가 부쩍 커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의 위대함을 넘어 생명이 얼마나 숭고한지까지 느껴집니다. 딸내미도 덩달아 신이 나지요. 어린이집 다녀온 후 해가 지면 물뿌리개에 물을 가득 담아가지고서는 여기 저기 뿌리는 것을 맡았거든요. 몇.. 2010. 8. 4.
아이를 앞에 두고 하는 짧은 상념 똥강아지가 나를 부른다. 해맑은 목소리로 “엄마~!”라고 부른다. 내가 대답하지 않으면 “엄마, 엄마, 엄마”하며 연달아 불러 제친다. 대체, 이 아이는 누군데 왜 자꾸 나에게 엄마라고 부르는 것일까? 내 뱃속에 아홉 달 이상 넣고 다녔으니 분명 내 아이가 맞긴 한데, 눈 아래 보조개에 입술이며 귀며 아빠랑 똑같은 걸 보니 내 남편의 아이도 맞긴 한데…… . 가끔 저 조그만 아이가 조그만 입으로 나를 부르며 달려와 품에 안길 때면 한 없이 행복하다가도 내가 정말 엄마인가 싶어 어색함을 느낀다. 그건 딸이 내 딸임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여전히 신기하고 의아해서다. 내 말이 세상의 진리라 여기는 투명한 아이. 사람은 누구나 서로에게 영향을 받으며 때론 끼치며 살아가는 게 세상의 이치겠지.. 2010. 7. 31.
엄마의 엽기 댄스에 뒤로 넘어간 딸내미 앞집에 있는 한국 가정이 이번 주말에 다른 주로 이사를 간답니다. 우리 똥강아지와 나이 또래가 비슷한 아이들이 둘이나 있는데다가 제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큰 도움을 받았던 집이라 무척 가깝게 지냈어요. 저는 헤어지는 게 마냥 아쉽기만 한데, 그 집에서 안 쓰는 장난감이 모두 우리 집에 오는 바람에 똥강아지는 팔짝 뛰고 신이 났습니다. 봉봉이(오른쪽)와 숭숭이(왼쪽) 한 달 전 그 집에서 사슴 인형 하나를 주었어요. 털이 하얀 루돌프 인형인데 똥강아지는 ‘봉봉’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지요. 그리고 바로 어제 똑같은 인형이 한 마리 더 왔답니다. 집안 구석에 숨어 있는 한 마리를 찾았던 모양이에요. 우리 가족 한 자리에 둘러앉아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했는데 똥강아지가 ‘숭숭’이로 하잡니다. 그러자 아빠가.. 2010. 7. 29.
망할 놈의 주부건망증, 나만의 대책은? 얼마 전 주부 건망증에 관한 기사를 하나 보았습니다. 친구와 휴대폰으로 통화 중에 휴대폰을 찾다가 전화를 끊고 마트까지 찾으러 갔다는 사연으로 시작했지요. 모르긴 몰라도 공감하는 이가 많을 것 같았습니다. 비단 주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젊을 때보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단지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 남성보다 주부들은 해야 할 일의 가짓수가 많아 더 심하게 나타날 테지요. 오늘은 제 건망증을 말해볼까 하는데요, 저도 서른을 넘고 애 하나 낳다 보니 자꾸 깜빡 깜빡하는 경우가 많아졌답니다. 외출을 할 때 가스 불을 켜두고 온 게 아닌가 걱정하는 것은 남들 이야기인줄로만 알았는데 고스란히 제 앞에 다가오더라고요. 무언가 찾으러 방에 들어갔다가 머리가 백지장처럼 하.. 2010. 7. 27.
비오는 날, 아이가 내뱉은 고소한 비유법 어느 해 6월,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었습니다. 종로 어디쯤에서 통일원 방향으로 향하는 마을버스를 탔을 때였습니다. 한창 초록 잎이 주변을 물들고 있을 시기에 내렸던 비라서 그랬는지 물줄기는 생명이 담겨 있는 듯 활기를 띠었습니다. 하지만 창문을 꼭 닫아 놓은 버스 안 상황은 좀 다르지요. 서로의 입김마저 불쾌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람이 꽉 찬 것도 불편할 지경인데다가, 습기를 머금은 대기는 후텁지근하여 움직이는 것도 짜증스러워 ‘그대로 멈춰라’를 해야 했습니다. 대강 접은 우산에서 주르륵 미끄러지는 물 때문에 바닥은 질펀했고 옆 사람 우산이 자꾸 허리를 찔러대서 피하느라 곤욕을 치르기도 했던, 그런 날이었습니다. 빗물이 창에 쉴 새 없이 부딪혀 그림을 그려대는 탓에 시선을 둘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 2010. 7. 20.
5세 아이가 사람을 그리는 순서 색연필이든, 크레파스든 쥐기만 하면 앞뒤로 힘차게 그어대던 아이가 원을 그리고 세모를 그렸을 때의 희열을 아시는지요? 삐뚤 빼뚤이지만 선을 연결하여 도형을 그릴 줄 안다는 게 왠지 다 키운 느낌마저 든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똥강아지가 혼자 꾸물꾸물 칠판 앞에 서서 뭔가를 그리더니 엄마를 다급히 불러댑니다. 세상에! 똥강아지 난생 처음으로 사람을 그린 것이었어요. 2010. 03. 21 제법 사람답게 얼굴에 눈 코, 입을 그려 넣고 팔, 다리까지 붙인 게 여간 잘 그리지 않았답니다. 물론 고슴도치 엄마 눈에 그렇게 보인 것이지만요. 제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자 똥강아지도 신이 났는지 연신 “엄마, 나 잘 그렸어? 예뻐?”를 묻고는 조옿~다고 헤벌쭉 웃더라고요. 들뜬 마음에 남편을 불러 함께 .. 2010. 7. 17.
샤워하면서 딸내미가 던진 한마디 “엄마 배꼽이” 밤 9시가 되면 우리 똥강아지와 저는 욕실로 향합니다. 하루 일과의 마지막 관문, 목욕을 하는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지요! 요즘은 날이 더워 탕 목욕보다는 샤워기로 휙휙 물 몇 번 돌리며 머리 감기고 비누칠하고 하는 덕에 10분이면 땡! 합니다. 우리 똥강아지로 말할 것 같으면 한국나이로 5살이지만 생일이 늦어서 미국나이는 아직 3살이에요. 정확히 말하자면, 이번 달로 45개월째 접어들고 있지요. 말은 좀 늦게 시작했는데 책을 무척 좋아해서 그런지 의성어, 의태어를 비롯하여 표현력은 좋은 편이에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목욕 부스에 들어가 딸내미 샤워를 시키고 있었답니다. 우리 똥강아지 키가 대략 100cm 되니까 서로 마주보고 서면 제 배꼽 부위에 딸내미 시선이 고정되는 상황이랍니다. 저는 보통 옷을 .. 2010. 7. 15.
“잘못된 문장은 나약한 정신을 드러내는 것” “잘못된 문장은 나약한 정신을 드러내는 것” 이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게 벌써 8년 전 이야기인가 보다. 팀에서 혼자 회사 사보를 만들면서 비문은 없는지, 띄어쓰기나 맞춤법은 맞았는지, 오탈자는 없는지 머리를 원고에 콕 쑤셔 박고 읽고 또 읽으며 내 나약한 정신을 온 천하에 공개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던 때가 있었다. 사보협회에서 하는 교육에 갔을 때 어느 대기업 사보를 만들던 직원이 했다던 말인데, 문장이 담고 있는 의미가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1500부밖에 찍어내지 않는 소규모 사보였지만 그래도 사보기자라는 이름을 달고 자부심을 느끼며 했던 일인지라 교정․교열을 보기 싫을 때마다 이 말을 되새기며 힘을 얻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때의 글을 다시 읽어보니 온갖 비문에, 문.. 2010. 7. 14.
서른 넷 주부, 블로그를 새로 시작하는 이유 서른네 살. 나는 서른네 살이다. 내가 나이를 이렇게 먹은 줄도 모르고 두어 달 전에는 남편과 내 나이를 두고 내기를 걸었다. 나는 내가 ‘만으로’ 서른셋이라 했고 남편은 서른넷이라 했다. 이런 젠장, 나이를 계산하는데 계산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남편이 이겼다. 미국에 온지 1년, 한국과 미국은 나이를 세는 법이 달라 여태껏 내가 ‘삼땡’이라 착각하고 있었던 거다. 2009년 연말이 결코 연말 같지 않았던 것도 핑계라 해두자. 어쨌건 나는 서른네 살의 주부다. 남들이 서른을 앞에 두고 뭣 하나 제대로 해 놓은 것 없이 불안해할 때 나는 내 서른이 행복했었다.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그 순간, 옆에는 비록 가난했지만 평생을 함께 할 남자가 있었고 그 남자랑 전세 갚을 돈으로 6개월 동안 배낭 하.. 2010. 7.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