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주부 건망증에 관한 기사를 하나 보았습니다. 친구와 휴대폰으로 통화 중에 휴대폰을 찾다가 전화를 끊고 마트까지 찾으러 갔다는 사연으로 시작했지요. 모르긴 몰라도 공감하는 이가 많을 것 같았습니다. 비단 주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젊을 때보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단지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 남성보다 주부들은 해야 할 일의 가짓수가 많아 더 심하게 나타날 테지요.
오늘은 제 건망증을 말해볼까 하는데요, 저도 서른을 넘고 애 하나 낳다 보니 자꾸 깜빡 깜빡하는 경우가 많아졌답니다. 외출을 할 때 가스 불을 켜두고 온 게 아닌가 걱정하는 것은 남들 이야기인줄로만 알았는데 고스란히 제 앞에 다가오더라고요. 무언가 찾으러 방에 들어갔다가 머리가 백지장처럼 하얗게 된 일은 다반사이고 사람 이름도 생각이 안날 때가 많답니다. 그러던 중 최근 ‘아, 내가 이정도구나!’라고 느낀 대박 건망증 사건이 있었습니다.
욕실, 부엌 등에서 나타난 3대 건망증 사건
우선 샤워할 때입니다. 매일 저녁 저는 샤워하는 동안 하루를 마감하며 내일 해야 할 일을 정리하거나 써야 할 글의 리드문을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몸의 피로를 풀면서도 머릿속은 복잡다단해지는 시간이지요. 그러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자꾸만 제가 세수를 했나 안했나 기억이 나지 않는답니다. 실제 있는 일이랍니다. 그것도 자주!
머리를 감고 몸에 거품을 칠하고 씻고 세수를 하는 등등 구지 생각을 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반복되는 과정이어서 그럴까요? 정말이지 세수를 했는지 안 했는지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럴 때면 하는 수 없이 세수를 또 합니다. 비누칠을 하여 얼굴을 문지르다 보면 그 손동작의 기억을 통해 ‘아 내가 했구나!’ 혹은 ‘이게 처음이구나!’를 깨닫는답니다. 어이가 없습니다.
또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습니다. 왜, 전화기를 냉장고에 넣었다는 경험담 있잖아요? 저는 그 반대로 냉장고에 넣어야 할 반찬통을 싱크대 위 여닫이 선반에 넣어두었지 뭡니까! 제가 그걸 넣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다가 며칠 뒤 그릇을 찾는답시고 선반을 열었는데 반찬통을 발견하고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답니다. 어찌나 황당한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요.
주부건망증의 또 다른 피해자는 같이 사는 사람일 겁니다. 가족들 말이에요. 몇 달 전에는 남편이 중요한 서류를 찾고 있었어요. 저에게 어디 있는 줄 아냐고 묻는데 갑자기 짜증이 확 솟구치면서 화가 나더라고요. 제가 어디다 두었다고 의심하는 것 같아서요. 화를 내며 그걸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쏘아 붙이고는 물건을 바로바로 제 자리에 두라고 잔소리까지 덧붙였지요. 결국 그 서류 찾았답니다. 어디서 나왔냐고요? 식탁 앞 저만 사용하는 서랍 속에 얌전히 누워 있었어요. 얼굴 화끈거려 혼났습니다. -_-;;
건망증에 관한 기사들을 보면 무슨 음식이 좋고 메모를 해라, 운동을 해라, 공부를 해라 등등의 정보들이 많습니다. 저는 최근 제 건망증 사건을 겪으며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예방법이라기보다는 건망증이 많은 이들을 위한 대책 정도가 되지 싶습니다. 건망증이 있어도 지혜롭게 사는 법이라고나 할까요?
1.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나만의 일이 아니야”
주부 건망증은 대부분의 여성이 겪는 일. 나이 먹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편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런 저런 사건으로 우울해지기 시작하면 끝도 없습니다. 어디 머리만 그런가요? 젊은 날엔 며칠 날밤 꼬박 세며 소주로 병나발을 불어도 끄떡없는 분들 많지 않았나요? 그런데 요즘은 다르지요. 와인 몇 잔에도 빙글빙글 흠뻑 취해 빨리 잠들고 다음날 힘들지 않으신가요? 즉 몸이건 마음이건 머리건 나이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2. 절대 확신하지 말 것 “어쩌면 내가 했을 지도 몰라.”
상황을 받아들였으면 그 다음 단계에서는 절대 자신을 맹신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내가 한 일을 알고 있다’가 아니라 ‘나는 내가 한 일을 모를 수도 있다’는 신념으로 살아야 합니다. 저처럼 남편이 중요한 물건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물어오면 “잘 모르겠는데 내가 어디다 두었을 지도 모르겠다”고 일말의 여지를 남겨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 그것이 내 소행으로 밝혀진다면 다음은 애교작전이 필요하지요. “호호호, 어머나 미안해, 주부 치매인가봐~” 기억이 안 나면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3. 메모는 필수 “달력, 보드, 수첩에 같은 내용 여러 번 적어”
확인을 잘하려면 메모는 필수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메모를 했다는 자체를 우리 주부들은 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가 쓰는 방법은 같은 내용을 여러 군데 적는다는 겁니다. 화이트보드, 수첩, 인터넷 메모장, 휴대폰 등에 오늘 해야 할 일부터 해서 읽어야 할 책, 장을 봐야 할 리스트 등을 빼곡하게 적습니다. 몽땅 다 잊는다 해도 왔다 갔다 하다보면 달력도 보게 되고 화이트보드도 보게 되고 결국 생각이 나더라고요. 반드시 시간을 지켜야 할 중요 사안이라면 휴대폰 알람 기능이나 스케줄 알림 기능을 활용하세요. 예를 들어 시댁식구들에게 꼭 전화를 해야 할 때라던가 마감 시간 같은 것을 알려 주는데 효과적입니다.
4. 전문가가 하란 데로 “운동도 하고, 머리도 쓰고”
그 외에도 건망증이나 치매 관련 기사에 나온 데로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면 도움이 되겠지요? 생각보다 쉽지는 않지만 운동은 건망증 외에도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니까 할 수 있을 때 하면 좋을 겁니다. 또 전문적인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고 잠은 충분히 자는 것, 술과 담배는 삼가는 것 등이 도움이 된다고 하네요. 제 생각이지만 매일 글을 쓰고 글을 읽는 블로거들은 건망증 때문에 괴로워 할 시간도 별로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 이제 주부 건망증에게 소리칩시다. 올테면 와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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