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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이야기/미국 살았던 이야기

우리집 덧밭에서 자라는 소중한 생명

by 영글음 2010. 8. 4.

저희 집 뒤뜰에는 손바닥만 한 텃밭이 있답니다. 전에 살던 사람이 깨, 고추 등을 길렀었는데 우리가 들어오면서 그대로 물려받았지요. 올 봄 동네 공원 한 구석에 놓인 거름을 날라다 몇 번 뿌린 것 말고는 별달리 한 것이 없는데도 햇볕이 좋아서 그런지 농작물들은 참 잘만 자랍니다. 


2010년 5월 25일 텃밭 풍경


2010년 7월 1일 텃밭 풍경


2010년 8월 2일 텃밭 풍경, 지난 5월에 비하면 깻잎 키가 무척 많이 자랐지요?

겨우내 꽁꽁 얼었던 땅을 뚫고 새 순이 돋아나 키가 부쩍 커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의 위대함을 넘어 생명이 얼마나 숭고한지까지 느껴집니다. 딸내미도 덩달아 신이 나지요. 어린이집 다녀온 후 해가 지면 물뿌리개에 물을 가득 담아가지고서는 여기 저기 뿌리는 것을 맡았거든요.



몇 달 전, 먹으려고 사놓았던 감자가 너무 오래돼서 싹이 났지 뭐에요. 저는 버리려고 했는데 남편이 보더니 자기에게 달라고 했습니다. 감자 하나를 칼로 네 등분을 내더니 뒤뜰 땅 속에 심는 거에요.

“감자 원래 그렇게 심는 거야? 그러면 싹이 나? 감자도 열리나?”

신기해하며 묻는 저에게 남편은 그런 것도 모르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목동, 잠실 서울 한복판에서만 자라는 저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웠지요. 남편도 서울에서 크긴 했는데 불광동 근처에 살아서 어릴 적에 산이며 물이며 그런 것들을 자주 보고 살았나 봐요.

그리고 5월 쯤 되었을까, 어느 날 땅 위로 작은 싹이 고개를 내밀었답니다. 몇 개월 간 소식이 없어서 땅 속에서 거름이나 되어라 했던 참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놈의 감자가 어찌나 잘 자라는지 옆에서 자라는 깨나 부추, 상추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쑥쑥 크지 뭐에요.



급기야는 예쁜 보라색 꽃도 피워냈답니다. 사실, 저는 감자에서 꽃이 피는 줄도 몰랐어요. 딸내미 자연관찰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감자며 오이, 벼 같은 식물에 꽃이 핀다는 것을 배웠지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열매나 씨앗을 맺는 모든 식물이 우선 꽃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전혀 감이 없었던 게지요.



연한 보라색 잎사귀에 가운데 노란 봉을 하고 있는 감자꽃은 참 예쁩니다.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겸손하게 한 가운데 조그맣게 매달려 있어요. 감자 농사를 지을 때는 영양분이 뿌리로 가도록 꽃을 모두 따줘야 한다고 하던데 우리 집은 꽃이 시들고 떨어질 때까지 함께 했답니다.

그런데 토끼가 밟고 갔는지 감자 줄기가 옆으로 쓰러져 버렸어요. 또 감자는 잘 크는 데 반해 옆에 심은 상추는 감자 잎사귀 때문에 햇볕을 못 받고 비실대더라고요. 그래서 감자 뿌리를 캤답니다. 뒤뜰 말고 앞 쪽 화단에 옮겨 심으려고요. 남편이 삽으로 땅을 살살 파는 순간! 땅 속에서 붉은 빛이 보이기 시작했답니다. 딸과 함께 신이 나서 더 팠더니 글쎄, 뿌리마다 동글동글 감자가 열린 거에요!







아직 크지는 않았지만 대여섯 알이 주렁주렁 달린 게 어찌나 귀엽고 뿌듯했는지 몰라요. 식물이 이렇게 자라는구나, 자연은 이렇게 생명을 잉태하는구나 싶은 감격에 딸과 저는 연신 환호성을 질러댔답니다. 
재미삼아 심은 감자에서 얻은 감자. 아직 제대로 영글지 못해서 맛은 덜 할지도 모르겠지만 내 손으로 키운 감자가 잘 자라주어 참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부추도 한번 심기만 하면 계속 키워먹을 수 있는 식물이에요. 부추는 햇볕만 있으면 며칠 만에고 쑥쑥 큽니다. 그러면 저는 쑹덩 잘라서 부침개도 해 먹고 부추무침도 해 먹고 하지요. 요것이 어찌나 유용한지 반찬 없을 때 가위 가지고 문밖으로 나가 부추를 데리고 들어오면 그만입니다. 신통방통 부추에요.



파꽃은 어떻게 생겼는지 아시나요? 작년부터 마트에서 사온 파를 흰 부분, 그러니까 파 대가리만 잘라 땅에 심었더니 이제는 필요할 때마다 가위들고 나가서 잘라 먹으면 된답니다.



파꽃은 동그랗게 모여서 열리더라고요. 이것도 꽃인지라 나비나 꿀벌들이 모여듭니다. 파꽃이 핀 줄기는 억세어지기 때문에 먹을 거라면 꽃이 이리 활짝 펴기 전에 잘라주는 게 좋아요. 



봄부터 딱 한 포기 열렸던 상추는 잎을 따서 먹으면 먹을수록 키가 커지더니 제 허리까지 자랐답니다.




이건 한 달 전에 찍은 사진이에요. 여러 개로 갈라진 끝에 매달린 저것들이 꽃인데요, 신기하게도 기온이 선선한 새벽녁에 노란색 꽃을 보여주는데 햇볕이 쨍 나면 봉오리를 닫아서 꽃잎을 감춘답니다.



햇빛을 받아 반짝 빛나고 있는 우리집 깻잎 색깔 참 예쁘지요?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기만 하면 저렇게 키가 큰 깻잎과 기타 등등의 깨끗한 먹을거리들이 저를 보고 방긋 웃습니다. 한 평 남짓한 뒤뜰 텃밭에서 올망졸망 우리 세 식구를 위해 자라고 있는 깨, 부추, 상추, 고추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아, 이제 또 저녁상 차리러 가야할 시간이네요. 메뉴는? 베가스님 블로그에서 본 순두부비빔밥과 강된장찌개! 당첨! 이 글 다시 올린 김에 부추도 좀 잘라와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