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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이야기/딸 키우기

엄마의 엽기 댄스에 뒤로 넘어간 딸내미

by 영글음 2010. 7. 29.

앞집에 있는 한국 가정이 이번 주말에 다른 주로 이사를 간답니다. 우리 똥강아지와 나이 또래가 비슷한 아이들이 둘이나 있는데다가 제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큰 도움을 받았던 집이라 무척 가깝게 지냈어요. 저는 헤어지는 게 마냥 아쉽기만 한데, 그 집에서 안 쓰는 장난감이 모두 우리 집에 오는 바람에 똥강아지는 팔짝 뛰고 신이 났습니다.
 


봉봉이(오른쪽)와 숭숭이(왼쪽)

한 달 전 그 집에서 사슴 인형 하나를 주었어요. 털이 하얀 루돌프 인형인데 똥강아지는 ‘봉봉’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지요. 그리고 바로 어제 똑같은 인형이 한 마리 더 왔답니다. 집안 구석에 숨어 있는 한 마리를 찾았던 모양이에요. 우
리 가족 한 자리에 둘러앉아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했는데 똥강아지가 ‘숭숭’이로 하잡니다. 그러자 아빠가 한마디 거들고 나섭니다.

“봉봉이, 숭숭이! 둘이 합치면 봉숭이네. 한꺼번에 부를 땐 봉숭아! 그러면 되겠다.”

봉숭아. 참 별 것도 아닌 일에 셋이 배꼽을 잡고 웃고 있는데 문득 제 머리에 ‘숭’이라는 글자가 아주 강하게 박히더니 옛 개그가 떠올랐지 뭐에요! 숭구리 당당 숭당당. 개그맨 김정렬 씨가 마치 뼈 없는 문어처럼 왔다 갔다 하던 춤이었는데 당시엔 꽤 유명했답니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몸이 살랑살랑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똥강아지! 엄마가 어릴 적엔 이런 춤이 있었단다.”


저는 다섯 살배기 딸내미를 앉혀두고 ‘숭구리 당당’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오른 손을 가슴 앞으로 가져와 날을 세운 뒤 다리에 힘을 풀고 우로 좌로 흔들거렸지요. 입으로는 연신 “숭구리 당당 숭당당 수구수구 당당 숭당당…….” 그리고 목청 높여 “정렬정렬 김정렬”까지 외쳐댔답니다. 이건 완전히 유치 찬란 뒷골목 극단 수준이었어요!

그 모습을 본 우리 딸, 웃느라 뒤로 꼴딱 꼴딱 넘어가며 침대에서 뛰쳐나와 엄마를 따라하기 시작합니다. “숭당 숭당 슝슝슝” 엄마처럼 유연하게는 못하지만 몸을 이리 꼬고 저리 꼬며 하다가 잘 안되자 토끼처럼 팔짝팔짝 뜁니다. 딸과 엄마가 ‘숭당당’의 세계로 빠져든 모습을 본 남편은 웃기면서도 기가 막혔던지 껄껄 웃으며 한마디 합니다.

“웬 쌍팔년도 개그를 하고 있어!”

쌍팔년도! 아직도 굴러가는 낙엽을 보고 깔깔거리는 저는 그 말에 또 한번 허리가 휘게 웃었답니다. 오늘 확인해 보니 이 개그는 92년에 유행했다고 하는데 남편 말에는 옛날 개그라는 뜻이 담겨 있었던 게죠.

아, 그런데 이게 중독성이 있어요. 딸을 눕혀 놓고 주방으로 내려왔는데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었어요.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면서도 계속 다리 힘을 풀고 숭구리 숭구리 하는 바람에 남편은 웃다가 혀를 차다가를 반복하고 갔답니다. 엄마의 철판 엽기 댄스에 똥강아지도 남편도 즐거운 밤이 되었지요.

가만 생각해보면 옛날 코미디는 요즘처럼 세련되지는 않았어도 나름 삶의 활력이 되었던 것 같아요.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도 따라하며 웃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 춤을 어떻게 추는 건지 보여드리고 싶은데 인터넷을 뒤져봐도 안 나오네요. 어쨌건 이 글을 읽고 1초 안에 ‘숭구리 당당 숭당당’의 유연한 몸동작이 떠오르시는 당신은 진정한 올드 보이! 우후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