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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이야기/딸 키우기

비오는 날, 아이가 내뱉은 고소한 비유법

by 영글음 2010. 7. 20.

어느 해 6월,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었습니다. 종로 어디쯤에서 통일원 방향으로 향하는 마을버스를 탔을 때였습니다. 한창 초록 잎이 주변을 물들고 있을 시기에 내렸던 비라서 그랬는지 물줄기는 생명이 담겨 있는 듯 활기를 띠었습니다.



하지만 창문을 꼭 닫아 놓은 버스 안 상황은 좀 다르지요. 서로의 입김마저 불쾌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람이 꽉 찬 것도 불편할 지경인데다가, 습기를 머금은 대기는 후텁지근하여 움직이는 것도 짜증스러워 ‘그대로 멈춰라’를 해야 했습니다. 대강 접은 우산에서 주르륵 미끄러지는 물 때문에 바닥은 질펀했고 옆 사람 우산이 자꾸 허리를 찔러대서 피하느라 곤욕을 치르기도 했던, 그런 날이었습니다.

빗물이 창에 쉴 새 없이 부딪혀 그림을 그려대는 탓에 시선을 둘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조금 앞쪽 의자에 나란히 앉은 엄마와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지요. 아들은 대여섯 살쯤 되어 보였는데 비 때문에 차가 막히자 지루했던 모양입니다. 한숨을 몇 번 쉬더니 제 엄마에게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엄마는 대답을 해주면서 다독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아이가 그럽니다.

“엄마, 비오는 소리가 꼭 팝콘 터지는 소리 같아요.”

토독, 토독, 톡톡톡……. 창으로 부딪히는 빗줄기 소리가 아이에게는 팝콘을 만들 때 나는 소리처럼 들렸나 봅니다.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다른 이야기를 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머릿속에는 온통 톡톡 빗소리와 함께 팝콘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때묻지 않은 표현이 놀랍기도 하고 잊을 새라 여러번 속으로 되뇌었지요. 어디선가 고소하고 향긋한 팝콘 향이 나는 것만 같아 혼자 웃었습니다.



문학작품을 읽다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의 직유, 은유의 표현을 종종 봅니다. 그럴 때마다 밑줄을 그어놓고 몇 번씩 읽고는 하지만 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에는 비할 바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만큼 순수한 직유법이 또 있을까요?

며칠 전 비가 내릴 때 똥강아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비가 오는 것이 무엇 같으냐고요. 우리 집 똥강아지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아기돼지 3형제가 늑대를 잡기 위해 끓이는 수프 소리 같다고 합니다. 보글 보글, 토독 토독. 그렇게 듣자니 또 정말 수프 끓이는 소리 같기도 합니다. 팝콘에 수프, 대체로 먹을 것이군요.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저 "비가 오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저에게 아이들은 모두 비유법 선생입니다.

그 해 6월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 마을버스에서 내려 우산을 펼쳐 들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창문에서 터지던 팝콘이 제 우산 위로 자리를 옮겨 신나게 튀겨지기 시작했습니다. 토독 토독 톡 톡 톡! 팝 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