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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내가 읽은책57

[달려라 아비] 상상 너머엔 긍정의 고개가 김애란 소설집 [달려라 아비]는 팝콘을 닮았다. 뜨거운 열을 가하면 어느 순간 ‘팝, 팝’하고 터지는 팝콘! 고소하고 짭조름하며 부드럽게 녹다가도 씹는 맛이 있어서 눈앞에 있으면 미처 터지지 못한 옥수수 알갱이가 바닥에 보일 때까지 끝장을 내야 직성이 풀리는 팝콘 말이다. 젊은 감각이 물씬 묻어나는 작가의 필력과 상상력은 강냉이가 아닌 팝콘이 된 이유이다. 단편 9편으로 이루어진 김애란의 소설집을 읽으며 참 여러 번 놀랐다. 도무지 따라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개성 넘치는 문체가 그렇고, 80년생이라는 작가의 나이가 또 그렇다. 이 책이 5년 전 나온 것이니 당시 그녀는 스물다섯이었을 테다. 아버지 없이 자란 성장기, 불안정한 20대의 처지, 현대인의 소외 등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자기연민과 슬.. 2010. 9. 30.
날카로운 사색은 벽을 넘는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사방이 꽉 막힌 벽, 한 발짝도 마음 놓고 넘지 못하는 좁은 공간에서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이 갇혀 있어야 한다면, 나는 과연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유를 막론하고 신체의 자유를 빼앗기면 자연스레 정신이 한정되고 사고가 갇히게 마련이다. 인간으로의 이성보다 동물적 감각에 기대는 일도 많아질 것 같다. 그러나 한 남자에게 벽은 사색의 공간이 되었다. 몸은 갇혔지만 벽으로 둘러싸인 감옥은 생각이 커가는 것까지 잡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의 사색은 단단한 벽과 시대를 넘어 오늘까지 많은 이들의 가슴을 깊게, 아주 깊게 파고든다. 현재 성공회대 석좌교수로 있는 신영복 교수의 이야기이다. 그는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수가 되었다. 말이 무기수이지, 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끝없이 마주.. 2010. 9. 28.
[뼛 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생각하지 말고 우선 쓰기 시작하라 뼛속까지 내려가서 글을 쓰라고? 도대체 어떻게 쓰란 말인가? 하나씩 생각해 보자. 뼛속엔 무엇이 있나. 그렇지, 골수가 있다. 골수란 무엇인가. 뼈 속을 채우는 부드러운 조직이다. 백혈구도 만들고 적혈구도 만드는. 그러니까 단단한 뼈를 뚫고 부드러운 골수까지 내려가란 말은 문제의 본질을 찾으란 말일 터. 다시 말해 마음속에서 진정 우러나오는 진짜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쓰라는 뜻일 게다. 빙고! 하지만 계속 눈물을 흘려야 하는 건 이게, 실천하려면 쉽지 않다는 것. 그러나 세상에 공짜로 이루어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으니 걱정 말자. 나에게 어려우면 남에게도 어렵다. 나탈리 골드버그가 쓴 를 차근차근 읽고 몸으로 받아들이고 하란 데로 계속 쓰다 보면 골수까지 빼서 글을 쓰는 경지에 다다를지도 모르지 않겠는가.. 2010. 9. 16.
[죽음의 수용소에서] 의미를 찾아라 그러면 살리라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걸 찾을 것. 시련이 오면 있는 그대로의 고통과 대면할 것. 이것은 정신의학자 빅터프랭클이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얻은 교훈이다. 두 문장으로 정리하니 다소 원론적인 내용이 되었지만 책 속에 펼쳐진 그의 경험을 읽고 나면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나 시련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삶의 의미가 아니라 ‘그것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창시한 로고테라피의 기본개념이기도 하다. 책의 대부분은 저자가 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생과 지옥의 문턱을 넘나들며 겪은 경험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언제 끝날 지도 모르는 불투명한 미래 앞에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희망을 빼앗겼던 사람들.. 2010. 9. 15.
가을에 물들고 싶다면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가을, 감정의 기복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계절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책 읽기도 좋고 지나간 옛 사랑을 추억하기도 좋은 계절이지요. 자기도 모르게 다가오는 감정소모를 굳이 막지 않겠다는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이 책은 드라마 방송작가 노희경 에세이입니다. 노희경은 , , , 등을 쓴 작가이지요. 대중에게 두루두루 인기가 있는 작가…라기 보다는(^^) 마니아 층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그 중 한 사람이고요. 최근 단막극 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그리 큰 호응을 얻었던 것 같진 않았는데 조만간 란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하네요. 책을 펼치면 작가의 사랑 이야기, 어린 시절 이야기, 어머니 아버지 이야기 또 방송가의 이야기가.. 2010. 9. 10.
정신 나간(?) 정신과 의사의 유쾌한 이야기 [공중그네] 여기 꼴통 정신과 의사 이라부가 있다. 그는 누가 의사이고 환자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신비한 재주가 있다. 또 누구라도 찾아오기만 하면 잡고 찌르기부터 하는 ‘비타민주사 중독자’ 이다. 진료실에 앉아 환자를 치료하기보다 호기심이 많아 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 하고 환자와 같이 사고치는 것을 즐긴다. 삶을 송두리째 흔들만한 심각한 문제도 그에게만 가면 가벼운 솜사탕으로 변신, 몇 입 베어 먹다 보면 다 없어지고 결국 남는 것은 막대기 하나뿐이다. 그것마저 쓰레기통에 ‘골인~’ 시키면 문제해결 완료! 그를 만나고 싶다고? 그렇다면 오쿠데 히데오가 쓴 를 들추면 된다. 소설은 이라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환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뾰족한 것을 무서워하게 된 야쿠자 중간보스, 실수를 반복하는 공중그네 곡예사,.. 2010. 9. 8.
지식인? 지식in? 지식인 사회의 현 주소를 말하다 조금 우중충한 청록색 표지의 책을 집어 들었다. 명조체로 이란 제목이 박혀 있다. 그런데 지식인이 ‘지식人’으로 읽히는 게 아니라 ‘지식in'으로 보인다. 어디선가 “거봐, 지식인은 죽었지?”라고 확신하며 묻는 것 같다. 표면상으로 민주화가 된지 20년, 사회 곳곳에서는 국민이 주인이 된 사회와는 거리가 먼 일들이 만연하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대한민국의 외관은 화려하게 변했으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변색하거나 후퇴하는 일도 많다. 지식인의 죽음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지식인, 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모습을 바꾸다 이 책은 경향신문에 87년 6월 민주항쟁 20년을 기념하며 16차 동안 특별기획으로 지면에 게재한 기사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일간지에서는 다소 다루기 힘들었던 참신한 기획과 방대한 .. 2010. 9. 8.
고등학교 때 봤으면 더 좋았을 경제사상 입문서 경제를 다룬 책이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 걸까? 그래프 하나 없이, 도표도 없이! 함께 사는 남자가 경제학을 공부하는 덕에 몇 번 책을 들여다 보긴 했으나 온갖 수식에 꼬불꼬불 영어로 되어 있어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경제학=어렵고 알쏭달쏭한 것”이라는 공식을 머리에 넣으려고 할 무렵, 샛별처럼 를 만났다. 어제 첫 장을 열고 오늘 마지막 장을 덮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 읽는 내내 포복절도했다. 이 책을 쓴 저자 토드 부크홀츠 역시 경제학자이다. 토드는 자유방임주의를 주창했던 애덤 스미스부터 시작해 맬서스, 리카도, 밀, 마르크스, 케인스 등 과거 역사에서는 물론 오늘의 경제,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경제학자와 그들의 경제사상을 독자에게 소개하고 있다. 단순히 여러 사상의 나열에 그치는 것.. 2010. 9. 3.
[우리는 사랑일까] 도표가 있는 독특한 심리연애소설 끝내주는 분위기, 황홀한 음식에 도취되는 여자. 유명한 레스토랑에 갔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는 여자. 당신은 어느 쪽에 가까운가? 소설 의 주인공 앨리스는 후자 쪽이다. 자신이 느끼는 마음보다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앨리스는 런던에서 광고회사를 다니면서 몽상가 기질이 다분한 24세 아가씨이다. 그녀는 어느 파티에서 운명처럼 에릭을 만난다. 그는 자기 일에서 성공하고 미남인데다가 완벽해 보이는 남자다. 소설은 앨리스가 에릭을 만나 연애를 시작하고 사랑하며 헤어지는 과정을 거치며 진실한 사랑 찾기 법을 배워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렇게만 설명하고 끝난다면 일반 연애소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 소설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작가 알랭 드 보통이 묘사하는 주인공들의 세세한 .. 2010. 9. 2.
[눈물은 왜 짠가] 삶을 예술로 옮기는 시인 함민복 산문집 눈동자에서 땀이 나는 사람이 있다면 믿을 텐가? 가세가 기울어 어머니를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리며 들른 설렁탕집. 어머니는 시인에게 고기국물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일 요량으로 소금을 부러 많이 풀어 국물을 더 받아내고, 시인은 국물 더 담아주는 어머니 정에 눈물이 고인다. 이마에 흐른 땀을 얼른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눈동자에서 난 땀을 닦아내는 함민복 시인. 그의 삶은 이내 글이 되고 독자의 가슴을 파고들어 작은 울림을 만든다. 강화도 개펄마을, 버려진 농가에 산다는 시인은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를 통해 자신이 살아온 길을 되짚으며 인생의 애환은 물론이요,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족과 피붙이를 말하고 지나간 사랑을 회상하며 어촌에서의 삶, 글쓰기 등을 돌아본다. 그는 그저 받아들일 수.. 2010. 8. 24.
[보랏빛 소가 온다] 소가 보라색이 아니라면 팔지도 마라 옛날 회사를 다닐 때의 일이다. 그 회사는 후발주자로 에센셜 오일 화장품 사업에 막 뛰어들었다. 이미 전 회사에서 신통치 않았던 경험이 있던 나는 궁금했다. 이 신제품은 성공할 것인가. 홍보팀이었던 내가 마케팅팀 A에게 물었다. “이미 시장이 포화상태인데 어떻게 할 계획인가요?” “강한 아로마 향을 내세워 마니아층을 만들 거예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브랜드를 알려야지요. 그게 우리 팀의 역할이에요.” 다소 두루뭉술한 A의 대답. 하지만 아직 홍보 분야에서 초년생이었던 나는 우격다짐식의 그 대답이 너무 멋져 보이기만 했다. ‘아, 역시 마케터는 다르구나!’ 그리고 1년 후……. 브랜드는 사라지고 회사에서는 추석, 설날마다 아로마 화장품을 직원들에게 나눠 주었다. 광고는 단지 광고일 뿐인 시대 -------.. 2010. 8. 20.
태초의 사나이 [그리스인 조르바]를 아시나요? 그리스인 조르바. 그는 60대 노인이자 살아 있는 가슴과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무아지경에 빠져 춤을 추어 전한다. 배고프면 정신이 피폐해지기 때문에 포도주며 돼지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엉덩이를 흔들며 다가오는 여자가 있으면 품에 안아버린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변화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신과 악마는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나이다.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게 있을 때 그는 이렇게 내뱉는다. “그런 건 악마나 물어가라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그리스인 조르바]는 글과 책 속에 파묻혀 사는 샌님 주인공이 조르바를 만나 함께 크레타 섬에서 탄광 사업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들과 주인공의 심리변화를 다룬 소설이다. 이성은 깨어 있지만 .. 2010. 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