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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내가 읽은책

태초의 사나이 [그리스인 조르바]를 아시나요?

by 영글음 2010. 8. 19.




그리스인 조르바. 그는 60대 노인이자 살아 있는 가슴과 푸짐한 언어를 쏟아내는 입,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 무아지경에 빠져 춤을 추어 전한다. 배고프면 정신이 피폐해지기 때문에 포도주며 돼지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엉덩이를 흔들며 다가오는 여자가 있으면 품에 안아버린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변화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신과 악마는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나이다.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게 있을 때 그는 이렇게 내뱉는다.

“그런 건 악마나 물어가라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그리스인 조르바]는 글과 책 속에 파묻혀 사는 샌님 주인공이 조르바를 만나 함께 크레타 섬에서 탄광 사업을 하면서 벌어지는 일들과 주인공의 심리변화를 다룬 소설이다. 이성은 깨어 있지만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 주인공은 야성 넘치는 조르바를 만나면서 일종의 깨우침을 얻는다. 육체의 즐거움을 정신의 즐거움으로 끌어올리는 법, 자유인으로 사는 법, 심장이 시키는 대로 사는 법 그런 것들이다.

독자들도 주인공과 한통속이 된다. ‘모두’는 아니겠지만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이 조르바의 팬이 되고 그에게 열광한다. 이미 여러 차례 이 책을 인생의 책으로 꼽는 사람을 자주 봐왔던 터였다. 인도 명상 철학가 오쇼 라즈니쉬는 ‘조르바 붓다’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오쇼는 조르바처럼 세속의 기쁨을 누릴 줄 알며 동시에 붓다처럼 침묵의 평화를 누릴 줄 아는 사람이 탄생할 터전을 마련하고 싶다고 했다.

왜일까? 욕 잘하고 여자나 좋아하는 건달노인에게 사람들은 왜 흠뻑 빠져버리는 걸까? 현자도 아니요, 위인도 아니요, 지위가 높은 것도 아닌 조르바에게 왜, 왜? 그는 삶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긴 채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실을 사는 자유인이었다. 주인공이 펜과 책으로 배우려 했던 것을 조르바는 살과 피로 싸워 몸소 부딪히며 삶을 익혔다. 마음이 가면 바로 행동했고 사물이나 자연에 관심을 두고 생명을 주었다.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466p)”

그러나 우리는 그러지 못한다. 최선을 다해 현재를 즐길 수가 없다. 먼 미래를 준비해야 하고 무슨 일을 하던 현실의 제약을 떨칠 수가 없다. 계산기를 두들겨 수지타산이 맞어야 행동한다. 우리를 둘러싼 사회가 조르바가 되는 것을 가로막고 나선다. 기뻐도 숨겨야할 때가 있고 슬퍼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조르바에게 그래서 더욱 열광하는 건 아닐까. 조르바는 가상이 아니라 작가가 실제로 만난 적이 있는 실존인물이라는 점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신을 통하여 구원을 받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구워해야 한다고 주장한 니코스 카잔차키스. 종교의 입장에서 보자면 욕을 먹고도 남을 이 말이 내게는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개척해야한다는 말로 들린다. 이 책을 통해, 또한 조르바를 통해 나는 삶의 흐름에 나를 맡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는 기회를 얻었다. 아직 답을 제대로 찾진 못했지만 하나 얻은 게 있다면 진정한 ‘현재’를 살아내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심장이 시키는 대로, 바로 그대로. ■



※ 책 속에서 마음을 잡아 끈 문장 몇 개 더

일을 어정쩡하게 하면 끝장나는 겁니다. 말도 어정쩡하게 하고 선행도 어정쩡하게 하는 것,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다 그 어정쩡한 것 때문입니다.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겁니다. 못 하나 박을 때마다 우리는 승리해 나가는 것입니다.”

“두목, 당신의 그 많은 책 쌓아 놓고 불이나 싸질러 버리시구랴. 그러면 알아요? 혹 인간이 될지?”

“확대경으로 보면 물속에 벌레가 우글우글한데요. 자, 갈증을 참을 거요, 아니면 확대경 확 부서 버리고 물을 마시겠소?”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름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두목, 어려워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바보, 아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