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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내가 읽은책

가을에 물들고 싶다면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by 영글음 2010. 9. 10.

가을, 감정의 기복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계절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책 읽기도 좋고 지나간 옛 사랑을 추억하기도 좋은 계절이지요. 자기도 모르게 다가오는 감정소모를 굳이 막지 않겠다는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이 책은 드라마 방송작가 노희경 에세이입니다. 노희경은 <거짓말>,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굿바이 솔로>, <그들이 사는 세상> 등을 쓴 작가이지요. 대중에게 두루두루 인기가 있는 작가라기 보다는(^^) 마니아 층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그 중 한 사람이고요. 최근 단막극 <빨간 사탕>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그리 큰 호응을 얻었던 것 같진 않았는데 조만간 <연애, 상처 그리고 소나기>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하네요.

 



책을 펼치면 작가의 사랑 이야기, 어린 시절 이야기, 어머니 아버지 이야기 방송가의 이야기가 주룩 쏟아집니다. 문학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문체도 맛깔스럽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가슴 한구석을 마구 내리칩니다. 짧은 책이지만 금세 덮을 수가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답니다.   

 

작가는 어린 시절 일곱 형제 여섯째로 태어나 가난하고 불량했다고 해요. 지독히도 부모 속을 썩여 천하의 쓸데 없는 계집애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지요. 초등학교 4학년 담배를 배우고, 고등학교 먹는 술을 먹어 병원에 실려가고, 수도 없이 집을 나가고 반항하고…….

 

하지만 작가에게 어린 시절의 방황, 아픔은 오히려 아닌 되었나 봅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보듬는 글을 써서 방송으로 만들고 있으니까요. 이런 연유로 작가는 쓰는 사람에게는 아니 모든 사람에게는 아픈 기억이 많을수록 좋다고 말합니다. 제가 가진 아픔도 글감이자 인생의 주춧돌이  있으니 소중히 간직해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덧붙여 봅니다. 

 

 

사이마다 노희경의 어록 같은 단문이 들어 있습니다. 인생에 대한 그녀의 짧은 고찰이 담겨 있습니다. 역시 문장 하나 하나가 쉽게 빠져나가지 않아 마음을 오래도록 잡아 끕니다. 이런 문장을 만들기 까지 작가는 얼마나 많은 사색의 길을 걸어왔을까, 얼마나 많은 글을 쓰고 깨지고 또 쓰고 깨지기를 반복했을까 생각합니다. 노동자처럼 하루 8시간씩은 글을 써야 한다는 작가의 원칙이 새삼 대단해 보입니다.

 

또한 인생에 빠질 없는 명제 사랑! 모든 일에 시행착오를 겪듯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저질렀던 오류, 잘못에 대해 작가의 고백을 들으며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지난 사랑을 돌이켜 보기도 했습니다. 젊은 시절 철없던 풋사랑부터 하여 지금의 사랑까지.

 

모든 겨울처럼 밤이 깊은 겨울이었다. 며칠째 주째 연락이 되던 그대를 찾아 나섰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얇은 추리닝 바람이었다. 20년간 나는 때의 행색을 다급함이라고 애절함이라고 포장했지만 이제야 인정한다.

 

상처 주고 싶었다. (p19)”

 

글에서 가장 중요한 솔직함이지요. 어떤 글이라도 솔직함과 진실이 담겨 있으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다 생각합니다. 허름한 옷차림으로 헤어진 연인의 앞에서 오돌오돌 떨었던 것이 실은 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고백은 그래서 오래 남습니다. 역시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던 젊은 날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카멜레온이 색을 바꿔 교묘하게 몸을 숨기듯, 저도 그게 남이 아닌 저에게 주는 상처라 믿게끔 했던 같아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중간마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나왔던 남녀 주인공들의 독백이 실려 있어요. 드라마를 보면서 무척 가슴 설레었던 장면들이 그대로 오버랩되어 생생히 되살아 났답니다. 작년 가을 드라마를 보면서 아! 드라마 한 편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 수도 있구나 그랬거든요. 그런데 간혹 드라마의 흐름과 관계된 글이 있어서 드라마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책에서 꼽는 한 가지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마음을 잡아끄는 책 속의 문장들>

이상하다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
이 말은 엊그제까지만 해도 내게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였는데,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준영일 안고 있는 지금은
그 말이 참 매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더 이야기할 수 있고, 
이해햘 수 없기 때문에 우린 지금 몸 안의 온 감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건 아니구나. 

또 하나 배워간다. 

(56p, 그들이 사는 세상  그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