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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내가 읽은책

[달려라 아비] 상상 너머엔 긍정의 고개가

by 영글음 2010. 9. 30.

김애란 소설집 [달려라 아비]는 팝콘을 닮았다. 뜨거운 열을 가하면 어느 순간 ‘팝, 팝’하고 터지는 팝콘! 고소하고 짭조름하며 부드럽게 녹다가도 씹는 맛이 있어서 눈앞에 있으면 미처 터지지 못한 옥수수 알갱이가 바닥에 보일 때까지 끝장을 내야 직성이 풀리는 팝콘 말이다. 젊은 감각이 물씬 묻어나는 작가의 필력과 상상력은 강냉이가 아닌 팝콘이 된 이유이다. 




단편 9편으로 이루어진 김애란의 소설집을 읽으며 참 여러 번 놀랐다. 도무지 따라하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개성 넘치는 문체가 그렇고, 80년생이라는 작가의 나이가 또 그렇다. 이 책이 5년 전 나온 것이니 당시 그녀는 스물다섯이었을 테다. 아버지 없이 자란 성장기, 불안정한 20대의 처지, 현대인의 소외 등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자기연민과 슬픔은 저만치 제쳐 둔 채 유쾌하고 담백하게 그려냈다는 점도 퍽 놀랄 일이다.   


<사랑의 인사>편, 공원에 버려진 아이의 입에서 ‘아버지가 날 버렸다’가 아니라 ‘아버지가 길을 잃었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 책에 흐르는 전반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대표적 장면이다. 또한 <달려라 아비>에서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를 원망하는 대신, 상상 속 아비에게 형광 반바지를 입혀주고 후꾸오까든 보루네오 섬이든 뛰게 만드는 일, <노크하지 않는 집>에서 같은 집에 사는 그러나 얼굴도 모르는 옆방 네 여자들의 행보를 상상하는 길에 함께 따라 나서는 것도 무척 신이 난다.          

 

김애란은 상황과 심리 묘사가 뛰어난 작가이다. 직유법도 잘 쓰지만 현상을 사물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도 일품이다. 이를테면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에서 급한 마음에 비누로 이를 닦은 아버지가 어머니와 사랑의 키스를 하는 순간, 수천 개의 비눗방울들이 나풀나풀 우주로 방사되며 싱그러운 비놀리아 향기가 밤하늘 위로 톡톡 퍼져나갔을 때 ‘네가 태어난 것’이라고 담담하게 고백하는 아버지의 말이 그렇다. 같은 작품에서 ‘최선을 다해 끓고 있는’ 복국의 묘사는 보글보글 소리를 귓가로 가져와 주었다.


이미 문학계에서는 5년 전 샛별처럼 나타난 그녀를 높이 평가한다고 한다. 독자들 또한 김애란을 두고 좋아하는 작가, 공감대 형성 100%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좀 싱그러워지고 싶다면, 혹은 한국 문학이 어디까지 왔는지 알고 싶다면 [달려라 아비]를 펼쳐 보시라. 기존 소설과의 차별성, 자기긍정의 가치, 톡톡 튀는 상상의 향연을 맛보실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나에게 세상의 사람을 둘로 나눠 보라고 하면 오늘은 김애란 소설집을 읽어본 사람과 읽어보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까 한다. 어디선가 김애란이 만들어 놓은 시멘트 사이로 포스트잇으로 된 종이 물고기가 팔딱팔딱 뛰어 다니는 것이 보이는 것도 같다. 혹시 여러분들은 보이지 않는가? 바로 저기, 저기에 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