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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내가 읽은책

[눈물은 왜 짠가] 삶을 예술로 옮기는 시인 함민복 산문집

by 영글음 2010. 8. 24.

눈동자에서 땀이 나는 사람이 있다면 믿을 텐가?

가세가 기울어 어머니를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리며 들른 설렁탕집. 어머니는 시인에게 고기국물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일 요량으로 소금을 부러 많이 풀어 국물을 더 받아내고, 시인은 국물 더 담아주는 어머니 정에 눈물이 고인다. 이마에 흐른 땀을 얼른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눈동자에서 난 땀을 닦아내는 함민복 시인. 그의 삶은 이내 글이 되고 독자의 가슴을 파고들어 작은 울림을 만든다.



강화도 개펄마을, 버려진 농가에 산다는 시인은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를 통해 자신이 살아온 길을 되짚으며 인생의 애환은 물론이요,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족과 피붙이를 말하고 지나간 사랑을 회상하며 어촌에서의 삶, 글쓰기 등을 돌아본다. 그는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을 가슴 시린 언어로 풀어내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힘을 지녔다.

가만 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함민복의 글은 길 한복판에서 시작해 여러 골목을 돌고 돌아 결국 다시 길로 끝맺음을 하는 것 같다. 어느 한 곳에도 정착하지 않고 세상 곳곳을 떠돌며 삶을 풀어내 시를 쓴다. 오히려 어딘가 메어두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는 바람처럼 ‘안녕’을 고할 태세다.

외람된 일이지만 나는 함민복 시인이 미웠다. 아니, 미웠다는 표현보다는 그냥 아팠다는 게 더 나은 말이리라. 힘들면 힘들다 소리치고 부수고 싶은 게 있으면 망치라도 들 일이지, 절제된 언어로 덤덤하게 글을 쓰는 시인이 아팠다. 직접 얼굴을 익혔던 사이라면 따져 물었을 것도 같다. 하늘에다가라도 대고 항변하지 그러느냐고, 왜 침묵 하냐고…….

그러나 책을 덮을 무렵,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시인인들 안 그러고 싶었을까. 다른 어떤 이도 아닌 자신의 인생, 얼마나 울음을 삼키고 또 삼키며 정갈하게 언어를 골랐을까 싶어 마음이 더 쓰린다. 글 속에 담긴 시인 마음의 씀씀이도 헤아리지 못하는 내 처지가 미안할 뿐이었다. 침묵의 범주가 다르고 행복의 기준이 다른데 감히 내 잣대로 남을 평가해서는 안 될 일이다. 슬프다, 힘들다는 말 한 마디 안하고도 독자의 가슴을 울릴 수 있는 그는 진정한 시인이었다.

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로 만난 그는 참으로 따뜻한 사람이요, 착한 사람이다. 강화도 개펄을 보면 이제 그가 생각날 것 같다. 혹 기회가 되어 그곳에 가게 되거들랑 내가 좋아하는 강화도 인삼막걸리나 한잔 했으면 좋겠다. 시인과 마시는 막걸리는 어떤 맛일까? 아는 척을 해주기는 할까? ■



샐러리맨 예찬
 
함민복

쥐가 꼬리로 계란을 끌고 갑니다
쥐가 꼬리로 병 속에 든 들기름을 빨아먹습니다
쥐가 꼬리로 유격 훈련처럼 전깃줄에 매달려 횡단합니다
쥐가 꼬리의 탄력으로 점프하여 선반에 뛰어 오릅니다
쥐가 꼬리로 해안가 조개에 물려
아픔을 끌고 산에 올라가 조갯살을 먹습니다
쥐가 물동이에 빠져 수영할 힘이 떨어지면
꼬리로 바닥을 짚고 견딥니다
30분 60분 90분 - 쥐독합니다
그래서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살아가는 삶은
눈동자가 산초 열매처럼 까맣고 슬프게 빛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