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꼴통 정신과 의사 이라부가 있다. 그는 누가 의사이고 환자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신비한 재주가 있다. 또 누구라도 찾아오기만 하면 잡고 찌르기부터 하는 ‘비타민주사 중독자’ 이다. 진료실에 앉아 환자를 치료하기보다 호기심이 많아 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 하고 환자와 같이 사고치는 것을 즐긴다.
삶을 송두리째 흔들만한 심각한 문제도 그에게만 가면 가벼운 솜사탕으로 변신, 몇 입 베어 먹다 보면 다 없어지고 결국 남는 것은 막대기 하나뿐이다. 그것마저 쓰레기통에 ‘골인~’ 시키면 문제해결 완료! 그를 만나고 싶다고? 그렇다면 오쿠데 히데오가 쓴 <공중그네>를 들추면 된다.
소설은 이라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환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뾰족한 것을 무서워하게 된 야쿠자 중간보스, 실수를 반복하는 공중그네 곡예사, 장인 가발을 벗기고 싶은 의사, 송구 제구력이 흐트러진 야구선수, 창작 스트레스를 받는 소설가 등 환자도 가지각색이다. 장편소설이라지만 5편의 이야기로 하나씩 완성된 작품이라 단편소설집 같은 느낌도 든다.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현대인의 고독, 피폐한 정신, 자격지심, 지독한 경쟁심 같은 주제를 이토록 유쾌하게 풀어낼 수 있는 건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구상과 문장력 덕분이다. 그래서 정확히 책을 넘긴 지 다섯 장 째부터는 시원하게 웃어재낄 수 있다.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 <공중그네>. 한번 읽어보시라. 당신이 안고 있는 문제도 솜털이 될 준비를 할지도 모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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