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책 이야기/내가 읽은책

날카로운 사색은 벽을 넘는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by 영글음 2010. 9. 28.

사방이 꽉 막힌 벽, 한 발짝도 마음 놓고 넘지 못하는 좁은 공간에서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이 갇혀 있어야 한다면, 나는 과연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유를 막론하고 신체의 자유를 빼앗기면 자연스레 정신이 한정되고 사고가 갇히게 마련이다. 인간으로의 이성보다 동물적 감각에 기대는 일도 많아질 것 같다.

 

그러나 한 남자에게 벽은 사색의 공간이 되었다. 몸은 갇혔지만 벽으로 둘러싸인 감옥은 생각이 커가는 것까지 잡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의 사색은 단단한 벽과 시대를 넘어 오늘까지 많은 이들의 가슴을 깊게, 아주 깊게 파고든다. 현재 성공회대 석좌교수로 있는 신영복 교수의 이야기이다.

 

그는 1968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수가 되었다. 말이 무기수이지, 빛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끝없이 마주해야 하는 건 분명 숨을 옥죄는 고통이 분명할 텐데 그곳에서 그는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썼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햇빛출판사>은 신영복 교수가 감옥에 있을 때 읽고 보고 느낀 바를 적어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 엮어낸 책이다.

 



계수와 형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글에서 그는 살뜰히 가족의 안부를 물으며 날씨와 계절을 알린다. 책을 읽는 사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으며 어느새 겨울, 또 봄이 되었다. 글 속에 겹겹히 쌓이는 20  년 시간의 흐름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간혹 전 편지와 다음 편지 사이 기간이 길어 뛰어넘을 때도 있었지만 계절을 몇 십 번 반복하는 사이 20대 풋풋한 청년은 40대 반백이 되어 있었다. 믿기지 않는 세월, 야속한 시대이다.

 

지식은 실천에서 나와 실천으로 돌아가야 아름답다

 

초판을 가지고 있는 터라 책은 바랠만큼 바래어 옛 학생회 책장에나 있으면 어울릴 법하게 생겼다. 허나 책 속에 있는 문장은 그 자체가 인생을 노래하는 시가 되었고, 삶을 관조하여 얻은 지혜였으며 자기반성 속에 큰 깨우침을 담고 있었다. 감옥에 난 작은 창으로도 세상을 볼 줄 알고 관계를 꿰뚫어볼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하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을 무렵, 나는 책을 많이 읽으면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안고 무작정 여러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신영복 교수는 실천과 더불어 발전하지 않는 이론을 질곡이라고 했다. 실천 없이 책만 읽는 것이 인식->실천->인식->실천의 과정 대신 인식->인식->인식의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오히려 현실의 땅을 잃고 공중으로 관념화해 간다고 말하며 갇혀 있는 육체를 괴로워 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창문보다는 역시 이 낫습니다. 창문이 고요한 관조의 세계라면 문은 힘찬 실천의 현장으로 열리는 것입니다. (……) 창문이 귀중한 명상의 양지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결연히 문을 열고 온몸이 나아가는 진보 그 자체와는 구별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43p)”

 

아는 것과 실천의 관계.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은 맞지만 누구나 아는 만큼 실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고 살 때가 더 많다. 책 읽으며 공감하고 결심하면 무엇하랴. 내 스스로 환경문제, 건강한 식품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마트에 가면 비닐봉투를 있는데로 받아오고 설탕, 기름 듬뿍 들어간 음식만 찾으면서 무얼 어쩌겠단 말인가. <희망의 밥상>을 읽고 난 후 먹고 있던 커피를 공정무역커피로 바꾸겠다는 실천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며 얼마나 뜨끔했는지 모르겠다. 문 없는 창은 결국 감옥 아니면 관념의 한복판일 뿐이었다.

 

이 책을 나에게 선물한 선배는 안쪽 여백에 자신만의 문체를 만들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볼 책이라는 글귀를 남겼다. 중간까지 읽었을 때 나는 한 사람의 문체는 오랜 시간의 사색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런 글을 써 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젠 알겠다. 배우고 사색하며 깨우친 앎을 실천하는 중에 글을 써야 생명이 담긴다는 것을.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 양 날개의 균형이 맞아야 삶도 글도 완성된다는 것을 말이다. ■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합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이, 실천보다는 입장이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형태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서화 출처: 더불어숲 - www.shinyoungbok.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