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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이야기/딸 키우기

"사람은 말을 꼭 해야 되요" 5살 딸내미 생각

by 영글음 2010. 9. 1.

며칠 전 아침, 남편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똥강아지네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다른 날과 사뭇 다르게 차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똥강아지가 뜬금없이 한 마디 던집니다.

“엄마, 사람은 말을 꼭 해야 해.”
“말? 그렇지, 말을 해야지. 근데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



똥강아지는 한참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힘겹게 입을 엽니다.
 
“인어공주는 바다 마녀에게 목소리를 팔아서 말을 할 수 없었잖아. 너무 불쌍해.”

아하, 얼마전 만화영화에서 보았던 인어공주 때문이었군요. 딸내미는
인어공주의 처지를 십분 이해라도 하듯 슬픈 목소리로 자기가 왜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합니다.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이제 남의 입장까지 생각할 줄 아는 나이가 된 건가 싶어 흐뭇하기도 한 순간이었답니다. 

“만약에, 바다 마녀가 똥강아지한테 와서 인어공주로 만들어 줄테니까 목소리를 팔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거야?”
“절!~~~~~~~~~대로 안 된다고 할 거야.”
“왜 절대로 안 되는데? 마녀가 똥강아지를 공주로 만들어 주는데도?”
“음, 그건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으니까 그렇지.”
“오호,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오늘은 어린이집에 가방을 메고 가겠다는 거나 차안에서 동화 틀어달라는 말 같은 거? 또 책을 본다는 말도 해야 하고 산토끼 노래도 불러야 하거든.”
“그렇구나. 우리 똥강아지는 그런 말을 해야 해서 목소리 팔면 안 되겠구나! 그럼 바다 마녀에게 잘 말해겠다. 할 수 있지?"
“응! 알겠습니다!"

공주도 싫답니다. 절대로의 ‘절’자를 한 5초간 끄는 걸 보니 하고 싶은 말이 많긴 많은가 봅니다. 하겠다는 말의 내용을 살펴보니 자신의 의지를 다지는 말, 엄마에게 부탁하는 말 같은 겁니다. 그런 말을 못하고 살면 얼마나 답답할지 3년 8개월을 산 딸내미는 벌써 알고 있는가 봅니다.

하기사, 딸내미가 바다 마녀에게 목소리를 팔면 아마 제가 더 힘들어질 것 같습니다. 딸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릴 방법이 줄어드는 거니까요. 울음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하던 그 시절을 겨우 건너왔는데 다시 그래야 한다면! 생각만 해도 속이 갑갑해집니다. 인어 공주가 되겠다면 제가 두 팔 걷어붙이고 말려야겠어요. ^^

나이가 들고 사람들과 부대끼고 살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을 내뱉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생기지요. 돌아보건대 저는 오히려 젊은 시절에는 우유부단하게 말을 잘 못했다가 머리가 굵어지면서부터 할 말 많이 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두 눈 동그랗게 뜨고요. 하지만 해야 할 말을 못해도, 혹은 거침 없이 해도 맘 한 구석이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상대를 적절히 배려하되 자신의 의사는 정확히 전달할 수 있도록 오늘도 노력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행동은 뒷전으로 두고 말만 앞세우는 일도 없어야겠지요? 

이건 어른들 이야기고 오늘 오후 우리 똥강아지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쉴새 없이 지지배배 지저귀며 엄마 귀를 즐겁게! (때론 힘들게!) 해줄 겁니다.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면서요! 설마, 어린이집에서 바다 마녀를 만난 것은 아니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