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규칙이 하나 있답니다. 결혼하고 나서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누가 먼저 잠자리에 눕던 나중에 누운 사람이 먼저 누운 사람에게 뽀뽀를 해야 합니다. 낮에 무슨 일이 있었던 간에(설령 부부싸움을 했더라도) 그것은 꼭 하고 넘어가야 할 필수 행동양식입니다. 한 쪽이 먼저 잠들어 있는 경우만 빼고 매일 그렇게 한 뒤에야 잠을 잡니다.
우리 똥강아지가 태어난 뒤에도 늘 ‘굿나잇 뽀뽀’를 합니다. 똥강아지가 어릴 땐 엄마, 아빠가 뽀뽀를 하건 말건 상관을 않더니 요샌 자기도 하겠다며 입술을 쭉 들이밉니다. 어쩔 땐 셋이서 한 곳에 입술을 모아 ‘쪽’ 부딪히기도 한답니다. 그건 뭐, 뽀뽀라고 하기도 뭣하고 입술 박치기에 가깝습니다.
며칠 전 밤이었어요. 저랑 똥강아지는 침대에 앉아 있었고 남편이 뽀뽀를 하려고 다가왔습니다. 저랑 먼저 뽀뽀를 했는데 똥강아지가 역시 “나도 나도”하면서 엄마, 아빠 사이를 파고듭니다. 결국 또 한 번 입술 세 개가 모이고 말았습니다. 요새 남편이 공부를 열심히(!) 하기 때문에 다시 공부방으로 갔고 저랑 딸내미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똥강아지! 아빠 입술은 엄마 거야. 똥강아지 거 아니야.”
그저 놀리고 싶어서 한 말이었는데 딸내미 입술이 움찔 움찔 하더니 양쪽 아래로 쳐져서 곧 울음을 쏟아낼 듯한 표정을 짓지 뭐에요? 저는 심술궂은 엄마, 이때다 싶어서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진짜야. 원랜 엄마만 뽀뽀할 수 있는 거야. 엄마가 양보해서 똥강아지도 할 수 있지.”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우리 딸내미 한마디 하데요.
“엄마……! 쉐어(share)해야지!”
쉐어, 쉐어, 쉐어! 하하하. 다들 아시겠지만 이 말은 사전적 의미로 보자면 공유한다, 함께 나눈다는 뜻이에요. 미국에서는 엄마도 아이도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쉐어한다는 말을 자주 쓴답니다. 또래끼리 놀 때 장난감을 나눠서 가지고 놀라는 뜻에서 어른들이 아이에게 자주 쓰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빠 입술을 공유할 때 쓰일 줄은 몰랐습니다. 참 별 것 아닐 수도 있는데 ‘쉐어’라는 한 마디에 우리 부부는 한바탕 실컷 웃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답니다. 아이를 키우는 재미가 이런 거겠지요? 그날 밤 저는 딸내미에게 한마디를 더 해주었습니다.
"있지, 나중에 커서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똥강아지만의 입술도 생길 거야."
이 말의 의미를 알아듣진 않았겠지요. 설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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