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갑니다. 어린 딸내미는 아빠의 뒷모습을 향해 절규하며 더 놀아달라고 소란을 피웁니다. 박사 2년 차 아빠는 샤워를 얼른 하고 나와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지요. 1월 개강 후 다시 공부에 매달리느라 바쁜 아빠입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저는 딸내미를 붙잡고 살살 달래기 시작합니다.
“똥강아지야. 아빤 얼른 씻고 공부하셔야 해요. 그래야 나중에 훌륭한 사람, 아니 훌륭한 사람은 아니고 음 뭐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단다.”
“멋진 사람이 되면 어떻게 되는데요?”
“아빠가 공부 열심히 해서 졸업하고 나면 멋진 사람이 되는데, 그러면 직장도 잘 구할 테고 돈도 벌고 몇 년 후엔 우리 진짜 집도 생길 수 있지! “
“엥? 여기가 진짜 우리 집 맞는데~?”
“이 집은 우리가 빌려 쓰고 있는 곳이야. 매달 돈을 내지 않으면 살 수가 없어요.”
“아니에요. 여기도 우리 집 맞고 한국 잠실에도 우리 집 있잖아요.”
“딸내마, 그건 엄마, 아빠 집도 아니고 똥강아지 집도 아니란다. 잠실 집은 할머니 집이지.”
“할머니?”
“그럼~! 할머니, 할아버지 집이지. 우리가 가서 놀다 올 수도 있고 잘 수도 있지만 우리 집은 아니다 이 말씀이지!.”
“……”
“오케이? 이제 엄마랑 놀까? 뭐하고 놀까나?”
한동안 말이 없던 우리 집 똥강아지, 한참을 생각하더니 한마디 불쑥 내뱉습니다.
“그 집, 할머니가 먼저 찾았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너무 웃기고 귀여워 침대로 쓰러지고 말았답니다. 하지만 눈물 자욱이 아직 마르지 않아 얼굴이 엉망이 되어 있는 똥 강아지 얼굴은 꽤 진지합니다. 한국 나이로 6살, 미국 나이로 4살 딸내미 생각에는 집이란 게 먼저 찾는 사람이 임자가 되는 줄 알았던 모양이에요. 제가 설명한들 이해하진 못하겠지요. 200원짜리 막대 사탕을 10만개 이상 먹을 수 있는 돈으로 집을 사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요샌 그 돈으로 전세도 구하기도 쉽지 않다지요.
‘딸내마. 집을 먼저 찾는 사람이 임자라면 얼마나 좋겄냐! 그랬다면 이 엄마가 비록 100m 달리기가 20초대이긴 하나, 두 눈 바짝 뜨고 두 주먹 불끈 쥐며 <달려라 하니>가 되어 온 세상을 뒤져서라도 멋진 집을 찾아 대문에다가 “이건 내 것”이라고 침 발라 놓았을 것이다!’
멋진 사람, 훌륭한 사람 운운하면서 집을 살 수 있다고 말한 제가 좀 웃기기도 합니다. 말로는 내 인생의 가치가 결코 부의 축적은 아니다, 라고 만인에게 Cool하게 말해 왔는데 왜 하필 집을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왔는지. 어쩌면 제 마음 속 저 깊은 골짜기에는 남들처럼 좋은 집 사서 살고 싶은 마음이 도사리고 있었나 봐요. ^^ 그래도 귀여운 똥강아지와 현빈(!@#$%^&*) 같은 남편이 있어 저는 행복하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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