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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내가 읽은책

[호모 쿵푸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by 영글음 2010. 10. 13.




겉장만 보고 ‘공부 잘 하는 사람 이야기인가?’하고 생각했던 <호모 쿵푸스>. 프롤로그에 앞서 쓴 짧은 글만 읽었는데도 단번에 책에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오랜만에 저자의 개성 넘치는 글 솜씨에 매료되어 시간을 잊었다. 읽기를 마치고 나니 푸른 새벽녘 어둠을 뚫고 떠오르는 여명을 맞이하는 듯하다. 

고미숙씨는 자신이 쓴 글을 읽고 나서 단 한사람이라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길 바란다고 했다. 그녀의 바람은 이루어진 듯싶다. 이미 내가 바뀔 준비를 하고 있고 모르긴 해도 많은 이들이 <호모 쿵푸스>를 읽고 삶을 더 깊게 파고 있을 게다.  

책, 시공간을 초월하여 가르침을 주다

이 책, 공부하라는 이야기 맞다. 하지만 학창시절 우리가 늘 들어왔던 엄마의 잔소리 같은 충고가 아니다. 공부란 게 흔히 우리가 떠올리는 입시, 토익, 토플 같이 각종 기능을 익히기 위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쿵푸처럼 몸으로 익히고 일상을 바꿔나가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방법은 책! 그것도 훌륭한 책 속에 비밀의 열쇠가 담겨 있으니 함께 소통하며 암송하고 스승과 벗을 만나야 한다. 저자는 책 중에서도 인문학, 특히 고전읽기를 강조하고 있다. 고전은 과거로부터 온 것이지만 늘 우리에게 도래할 시간을 예고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호모쿵푸스>는 ‘책 읽는 방법론’ 혹은 ‘나처럼 하면 이만큼 된다’는 식의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이 책은 20세기 근대 산물인 학교 안의 제도교육, 그 안에서 벌어지는 독서와 공부의 분리, 붕괴되는 교육현장 등 우리교육 현실을 낱낱이 파헤치는 것부터 시작하는 인문학 도서이다.

본격적으로 왜 우리는 평생 공부해야 하는가, 고전에서 배우는 공부법, 글쓰기가 신체를 어떻게 단련시키는지 등의 내용이 펼쳐지기 시작하면 스님에게 죽도로 어깨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번쩍 든다.

그중에서도 아하! 하면서 무릎을 쳤던 것은 ‘공부법 자체가 개인의 밀실에서 나와 대중의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를 하되 여럿이 모여 함께 큰 소리로 암송하며 토론하고 네트워킹을 해나가면 혼자 할 때보다 효과가 몇 배는 더 된다고 한다. 저자가 <연구모임 수유+너머>에서 실천했던 방법이기도 하다.

저자의 내공은 텍스트와 몸을 섞는 법을 익히는 데까지 갑니다.

“그러다 보면 문득 알게 된다. 내가 자료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료가 내 신체를 통해 스스로 웅성거린다는 것을. 세상 가득히 앎의 흐름이 있고, 나는 단지 그 흐름 속을 이리저리 유영(遊泳)하고 있다는 것을” (p 132)

아직 내가 이 단계까지 오르지 못하여 무슨 느낌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살면서 꼭 경험해보고 싶은 무술(?)의 경지임에는 틀림 없다.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모여 함께 텍스트를 소리 내어 읽고 토론하는 것,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독서모임을 한번 만들어 볼까 하는 오래된 고민이 다시 한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