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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내가 읽은책

[인간 없는 세상] 인간과 자연의 화해를 꿈꾸며

by 영글음 2010. 10. 1.


한 편의 판타지 소설을 읽은 기분이다. 공상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영화를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법도 하다. 이 세상에서 어느 날 갑자기 단 한 명의 인간도 남지 않고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물론, 영화가 되려면 한 명 혹은 두 명은 남겨둬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런 기막힌 가상 시나리오가 작가나 감독이 아닌 저널리스트의 머릿속에서 나왔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인간 없는 세상]이란 책을 마냥 재미로만 읽을 수 없는 이유이다. 논픽션, 즉 현실 가능한 일이니까 말이다. 


인간이 사라진 뒤에 남을 생명체와 자연의 놀라운 복원력을 상상하기 위해 독자는 지구가 탄생할 당시까지 거슬러가거나 백년, 천년, 만년, 몇 억년 후의 미래를 누벼야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결코 지난날이나 앞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초점은 미래에 맞추지만 정작 읽고 나면 지금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현실의 모습을 돌아보며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안겨준다.


미국의 국제저널리즘 교수이기도 한 앨런 와이즈먼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아마존, 아프리카, 북극 등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전문가를 만나 취재를 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그중에는 한국의 비무장지대도 들어 있었다. 냉전 덕분(?)에 지금까지도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비무장지대에서는 이미 저자가 추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예컨대, 그곳은 사라졌던 동식물이 다시 돌아오는 등 멸종 위기의 야생종에게 더할 수 없는 보금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결국, 사람이 사라지면 자연이 돌아온다.


그러나 자연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되려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멸종 후 1년만 있으면 고압전선의 전류로 매년 10억 마리씩 죽는 새들이 다시 번성을 한다지만 생물체에 치명적인 납 성분이 토지에서 씻겨나가려면 3만5천년이 지나야 한다. 또 10억년은 지나야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가 인류 이전의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 30억년이 흐르면 인류 외의 어쩌면 인류와 비슷한 수준의 지적능력을 가진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하여 지구를 정복할지 모른다. 만년, 억년이 도대체 얼마만큼의 시간인지 가늠하기는 힘든 일이지만서도…….


나는 [인간 없는 세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 인류의 문명이란 것이 인간 입장에서 본다면 발달이요, 진화이지만 자연의 입장에서는 파괴요, 피정복의 과정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이 자연에서 청동이니 철기니 어떤 도구를 써가면서 발전해 왔는가. 우리는 그것을 ‘문명의 발달’이라 부른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숲을 태워 초원을 만들거나 과도하게 동물을 학살하며 멸종시키기도 하는 등 자연과의 조화를 깨뜨리기도 했다.


오늘날은 또 어떤가.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산과 바다에 각종 ‘듣보잡’의 물건들을 내던지고 있지 않나. 발암물질을 비롯한 각종 오염물질, PVC, 플라스틱 등……. 산업시대, 자본주의의 최대 결과물들은 우리의 손을 거쳐 다 쓰이고 나면 지구에 버려져 오히려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지금 당장 인간이 사라진다고 해도 그것들이 분해되려면 감을 잡을 수도 없는 세월이 흘러야 하는데 오늘도 역사는 계속되니 복구에 필요한 시간은 점점 늘어가고 있을 터이다.


앨런 와이즈먼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우리의 욕심이 너무 지나쳐서 우리도 자연도 생존이 불가능해지기 전에 자연과 균형을 이루며 사는 방법을 찾아내야 할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즉, 자연과 함께 살아갈 방도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3D영화로 세계를 강타했던 <아바타>가 말하려던 ‘자연과의 상생’과 꼭 닮아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지금 인간이 처한 상황이 그리 녹록치 만은 않지만 인간보다 위대한 자연이 있기에 조심스레 희망을 한 가닥 걸어보겠다. 책의 마지막 문장이 그걸 대신한다.


"결국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 6개월 전에 쓴 글 새 블로그에 다시 올린 것입니다. ^^ 좋아하는 책이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