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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이야기/미국 살았던 이야기

폭풍 속으로 날아간 나비는 어떻게 됐을까

by 영글음 2010. 10. 13.
지난 1주일 동안 똥강아지네 집에는 조그만 번데기 한마리가 살았답니다. 얼마전 대학에서 하는 <Insect Fair: 곤충 축제>에 참가했다가 기념으로 받아온 거에요. 애벌레가 번데기로 변신하여 투명한 플라스틱 투껑 위에 탁 붙어 있는 것을 조심스레 데리고 왔습니다.

작은 통에 담겨 있어서 나비가 되면 답답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빈 물병으로 옮겨주었지요. 안에 돌을 깔아 쉽게 넘어지지 않게 하고 번데기가 매달린 뚜껑을 조심스레 덮었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 애벌레가 절반만 번데기가 된 것 같았어요. 시간이 지나면 몸 전체가 변하려나 생각했는데 여전히 저 모양이더라구요.



기다렸습니다. 사실, 잊었습니다. 일주일이 넘었는데 계속 같은 모양이길래 죽었나? 그랬습니다. 며칠 지나도 반응이 없으면 밖에 버리려고 했었어요. 분명, 일요일 오전까지 사진과 같은 모양으로 애벌레 반, 번데기 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불과 몇 시간만에 나비가 되어 번데기를 탈출했지 뭡니까! 제가 발견했을 때 나비는 번데기 주머니에서 마지막 다리를 막 빼고 있었답니다. 사진으로 남겨 놓고 싶었지만 감탄하느라 놓쳐버렸습니다. 게다가 번데기에서 나오자마자 아래로 똑 떨어져 돌멩이 사이로 숨어버렸거든요.





이건 나비가 몸을 빼고 남은 껍질입니다. 이제야 의문이 풀립니다. 자세히 살펴 보니 애벌레 무늬가 보였던 번데기 윗 부분도 실은 얇은 막에 둘러 쌓여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왜 번데기가 반만 되었을까 의심을 품었었네요.



만화를 보려고 의자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나비가 나왔다는 소식에 들떴습니다. 오른쪽이 똥강아지, 왼쪽은 우리 앞집에 사는 '아비'에요. 동갑내기라 어리이집에 다녀오면 저녁먹기 전까지 뒤뜰에서 같이 뛰어 노는 친구랍니다. 

나비는 번데기에서 나온 후 날개를 말려야하기 때문에 바로 날지 않는답니다. 그때 사람 손에 얹어 놓아도 날지 않고 가만히 있어요. 물병을 자르고 돌멩이를 들어올려 제 손을 내빌자 나비가 사뿐히 올라옵니다.  앗! 그런데 왜 다리가 4개뿐일까요? 곤충은 모두 6개여야 하잖아요. 돌돌 말린 입도 없는 것 같고요. 얼른 똥강아지 <자연관찰> 책 중에 나비와 나방 편을 꺼내 들었습니다. 아, 네발나비류가 있네요. 앞 다리 두 개가 퇴화해서 네 개만 사용하는 나비가 있다고 합니다. 나중에 사과를 먹을 때 보니까 대롱 같은 입이 쭉 나오는 것도 보았답니다. 안심이에요. ^^





나비가 날개를 폈습니다. 화려한 색과 무늬가 짠! 나왔습니다. 이 나비 이름은 Painted Lady Butterfly에요. 한글 이름은 작은멋쟁이나비라는데 잘 어울리지 않나요? ^^ 제가 <자연관찰>에서 찾아본 데로 네발나비류의 곤충이고요, 남극을 빼고 전 세계에 두루두루 산답니다. 유럽에서는 무리를 지어 바다를 건넌다고 해요. 이런 나비가 바다를 건너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장관일 것 같아요.





어라? 요 녀석이 제 손 끝으로 사뿐히 올라가더니 거실 문 밖으로 포르르 날아갔습니다.



저와 아이들은 우르르 뒤뜰로 따라 나갔지요. 아직 날갯짓이 쉽지 않은지 풀에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옆집에 사는 사람들도 나와 나비를 손에 올리고 사진을 찍습니다.



똥강아지 손에도 올라갔네요? 번데기를 받았을 때 함께 받은 쪽지에 나비가 되면 집에서 하루 이틀 키우다가 날려주라고 써 있었어요. 이 나비가 혹여라도 풀 밭에 앉아 있다가 누군가 밟으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이 들어 도로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넓직한 통에 꿀도 주고 사과껍찔도 놓았어요. 나비는 여전히 날 생각은 하지 않고 쉬기만(?) 합니다.





나비의 탄생은 일요일 저녁. 월요일 저녁까지 날지도 않고 가만가만 우리집을 제 집처럼 생각하던 나비가 어느 순간 포르르 포르르 날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집 식탁을 돌아 의자 밑에 앉았다가 거실을 한 바퀴 돌고 똥강아지 다리 사이에 앉고 다시 날아 오릅니다. 

이젠 때가 되었구나. 날려주자. 가만 거실 창을 열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문을 찾아 날아가진 않더군요. 손을 대면 또 손 위로 올라옵니다. 나비를 손에 얹고 제가 나갔습니다. 그리고 살며시 고춧잎사귀 위에 내려 놓았습니다. 아쉬웠지만 나비에게 인사를 하고 집에 들어와 문을 닫았습니다. 이제부터 작은멋쟁이나비의 본격적인 세상살이가 시작되겠지요?  

한 시간 뒤 하늘에서 우룽우룽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바람이 거세게 불고 굵은 빗줄기가 세차게 내렸습니다. 아 우리 나비! 하루만 더 있다가 놔줄 걸 하는 후회가 밀려 들었습니다. 나비가 비를 맞고도 잘 날 수 있을런지, 이것이 어디에 숨는 법은 아는지 걱정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답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나비는 자연이라는 것을요. 우리집에 오지 않았으면 나비가 되자마자 비를 맞을 수도 있고 새의 먹이가 될 수도 있는 대자연의 일부라는 것을요.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똥강아지를 온실에서 키우는 건 아닌지. 세상을 사는 법 대신 내가 살아주려고 한 적은 없는지 말입니다. 얼마전 <내남없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굄돌님 글에서 두 딸들에게 홀로 서는 법을 가르치셨다는 글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약간의 반성과 다짐을 했습니다. 똥강아지도 혼자 날게 하자고요.  

작은멋쟁이나비는 잘 살아 갈 겁니다. ■



※ 이건 우리집에 사는 나비에요. ^^ 꼭 사람 같이 생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