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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이야기/미국 살았던 이야기

내 손으로 딴 사과, 넝굴째 굴러가는 호박

by 영글음 2010. 10. 12.

바야흐로 만물이 익어가는 계절, 가을입니다. 여름 내내 우주의 양기를 받아 튼실히 자란 생명을 거둬들이는 때이기도 하지요.  지난주 토요일 똥강아지와 똥강아지 엄마가 가을을 만끽하고 왔답니다. 집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농장에 가서 사과도 따고 호박도 따고 왔거든요. 매해 가을마다 시골마을에서 하는 작은 이벤트인데 작년엔 정신이 없어서 못 가고 올해 처음 가봤답니다. 한국은 요즘 채소 값이 무자비하게 올랐다지요? 상상을 초월하는 배추값 이야기에 가슴이 탁 막혔는데 미국에서 예쁘게 익어가는 과일, 채소를 보니 마음은 더 심란해집니다. 농민, 서민들이 살기 힘든 세상이에요.  

각설하고,

농장 이름은 <Way Fruit Farm>이에요. 이곳을 운영하는 농부는 135년 전부터 농장을 해왔다고 해요. 약 1000그루의 사과나무가 있는 큰 곳이지요. 사과뿐 아니라 복숭아, 딸기, 옥수수, 호박 같은 애들을 키우고 있는데 매년 10월 두 번째, 세번째 토요일이 되면 사람들이 나무에서 사과를 직접 딸 수 있는 행사를 연답니다. 일종의 사과 따기 체험 같은 거에요. 사과를 따기 전에 봉지를 사야 하는데, 가장 큰 것은 10불, 다음 것은 8불, 제일 작은 것은 5불이에요.그 안에 원하는 만큼 따서 넣어가면 된답니다. 호박은  밭에서 원하는 것을 고른 후에 무게로 팔더라고요. 1파운드 당 32센트에요. 



여긴 농장에서 운영하는 상점 바로 앞 잔디밭이에요. 이벤트를 한다고 호박을 많이 갖다 놓았더라고요. 엄마들은 다들 아이를 호박 사이에 세우고 사진 찍기에 바빴답니다. 물론 마음에 드는 것을 살 수도 있어요. 미국 사람들은 저렇게 큰 호박을 사다가 먹기도 하고 10월 말에 있는 할로윈 때 장식으로 쓰기도 해요. 11월 말에 있는 땡쓰기빙데이까지 쭉 쓸 수 있지요.


사과 따러 가기 전에 먼저 호박 밭으로 갔답니다. 그곳까지 가려면 'Wagon'이라고 부르는 기다란 트럭 같은 것을 타고 가야 해요. 이건 줄서서 기다리면서 찍은 사진이에요. 중간에 남자 아이가 줄을 당기고 있는 게 보이시나요? 사과를 넣고 줄을 당겨서 밭으로 사과를 쏘는(?) 중이랍니다. 기다리면서 재미삼아 해보라고 만들어 놓은 거에요. 처음에는 어떻게 먹을 것을 가지고 장난을 쳐! 하고 생각했지만 사과 밭에 가보니 바람에 떨어진 애들이 많더라구요. 그래도 아깝긴 아깝데요.



호박 밭으로 가는 트럭 뒷 모습이랍니다. 하늘이 무척 맑은 날이었어요.



 출발하기 전, 트럭에서 농장 상점을 바라본 풍경이에요. 트럭은 꼭 놀이기구를 타는 것 같았답니다. 



이젠 호박밭으로 출발입니다. 운전사 바로 뒷자리에 앉는 바람에 흙먼지 옴팡 뒤집어 썼어요!



호박 밭으로 가는 중간 중간 사과 나무가 보입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쓴 아가씨가 똥강아지, 옆에 앉은 아이는 똥강아지 친구에요. 분홍색과 공주를 좋아하는 말괄량이 아가씨에요.



호박 밭에 도착하니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이 골라잡은 호박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네요. 잘 안 보이지만 빨간 트럭 바로 앞에 작은 테이블이 있고 저울이 있어요. 직접 무게를 달아 보고 현금으로 계산하면 된답니다. 자기 얼굴보다 두 세 배 더 큰 호박을 여러 개씩 사가는 사람도 많았어요.



이젠 본격적으로 호박따러 갑니다. 그런데 사실 호박을 따지는 않았어요. 얼핏 봐도 줄기가 너무 굵어서 쉽게 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는데 그래서인지 이미 다 따 놓았더라구요. 그저 왔다 갔다 하면서 맘에 드는 호박을 들고 오면 땡이랍니다. 저는 조금 아쉬웠는데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넓은 호박밭 사이를 요리조리 달려갔더랍니다. 달리다 넘어지고 조금 울고 또 일어나 달리고……. 엄마는 사진좀 찍어볼까 했는데 하도 달리는 통에 제대로 된 건 못 찍었네요. ^^



다행히 달리기 직전에 찍은 사진이 있어요. 밭에서 나는 유기 비료 냄새 때문에 아이들이 코를 막았어요. 무슨 냄새인지 다들 상상할 수 있으시지요? 그게 화학 비료보다 훨씬 좋은 거라고 설명을 해줬는데 애들이 알까 모르겠네요.



둘이서 이 호박이 예쁘다, 어쩐다 하면서 호박을 고르데요. 주로 큰 것을 좋아라 했지만  들어 보려고 시도하다가 무거워서 포기하고 또 달리고 그렇게 들었다 놨다를 여러번 반복했답니다.



주황색 호박 색이 참 곱습니다. 처음엔 호박을 사지 않으려고 했어요. 아무리 예뻐도 시간이 지나 상하면 바로 쓰레기통으로 갈텐데 하는 생각이었거든요.그런데 아이들이 호박을 집접 봐서 그런지 갖고 싶어하더라고요. 한참 고민하다가 아담한 크기의 호박을 하나 들고 왔답니다. 3불 20센트였어요. 이왕 샀으니 호박도 해 먹고 눈코앞 잘 뚫어서 할로윈 때 쓸까 싶네요. 안에 촛불도 넣고요.



다시 트럭 타고 사과 밭으로 갑니다.





사과 밭은 제 생각보다 훨씬 컸답니다. 가기 전에는 동네 과수원 정도로 생각해서 사람들이 붐빌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웬 걸요. 무지 넓어서 걸어다니기도 힘들 정도랍니다. 사과나무 1000그루가 이정도구나 실감했지요. 종류도 많아 이쪽 저쪽 옮겨다니면서 사과를 따야 한답니다. 그런데 며칠 동안 비가 좀 와서 그런지 사과가 많이 떨어졌어요. 아까워 죽겠데요.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것인데 상품 가치는 떨어질 겁니다. 올 여름 폭우로  자식 같은 농산물을 잃어야 했던 농민들 마음은 저보다 몇 천배는 더 했겠지요?



사과 따기 체험을 하면서 재미있는 것은 얼마든지 사과를 먹어도 된다는 거에요. 사과를 따서 옷으로 쓱쓱 문지른 후에 껍질째 앙 베어 물면 사과 특유의 향긋한 향과 아삭아삭한 질감이 입 속으로 들어와 가을을 전해준답니다. 우리 똥강아지도 몇 개나 먹었어요. 저도 사과를 많이 먹어서 배가 빵빵해졌어요.



요건 상점 안에서 사과를 고르는 모습이에요. 아쉽게도 사과 따러 가는 체험을 하기 전에 이걸 먼저 샀지 뭐에요. 호박 밭 갔다 오고 나서 사과는 그냥 여기서 사자 싶었거든요. 대신 제일 큰 봉지가 8불이었어요. 직접 따서 담는 것보다 2불 싸요. 그런데 똥강아지가 집에 가기 싫어 해서 할 수 없이 친구네는 먼저 보내고 둘이서 사과 밭에 갔던 거랍니다. 내년에는 처음부터 밭으러 가려고요.



촘촘히 많이 담았지요? 얘네들이 우리집으로 온 사과들이에요. 사과 4종류를 담았는데 '갈라'라는 종류를 가장 많이 담았더니 우째 그것만 보이는 것 같네요. 이만큼이 우리 돈으로 약 만원이 조금 안되었습니다. 산지에서 직접 사니까 나름 싼 편이지요. 이렇게 한 봉지 가득 담아 오니 한동안 과일 걱정 안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주부된 입장에서 참으로 흐뭇한 광경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



미국 시골마을에서 하는 사과 페스티발은 싱싱한 사과를 먹을 수 있다는 점도 좋지만 아이들이 직접 자연을 느끼고 조금이나마 노동(?)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우리 똥강아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 사과처럼만 싱싱하게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아, 남편과 저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