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동아리 선배가 셋째를 낳았습니다. 94학번 선배인데, 딸만 둘을 뒀다가 결혼 10년 차에 아들을 ‘쑴풍’ 낳았다고 하네요. 오랜만에 갓난쟁이 키우려니 고생 좀 하나봅니다.
대학 때 활동하던 동아리는 209년 겨울 문을 닫았지만 인터넷 카페가 있어서 서로 소식을 올리곤 합니다. 다들 옛사람과 추억이 그리운지 글 하나만 올리면 조회가 100을 넘는 건 기본이에요. 오랜만에 선배 언니의 득남 소식에 게시판이 시끌벅적해졌는데 그 중 하나가 저에게 달린 꼬리표랍니다.
얼굴도 무지 예쁘고 하늘하늘하던 선배가 벌써 세 아이의 엄마라는 게 저는 믿기지 않다고 댓글을 남겼더니 한 선배가 그 밑에 글을 답니다. 그 언니보다 제가 아이 엄마라는 사실이 더 신기하다고요. 애가 애를 낳았다는 말과 함께요.
제 나이 이제 서른 넷, 유전적인 영향으로 머리를 한 번 넘길라치면 흰 머리카락이 군데, 군데서 ‘안녕?’하고 손을 흔드는 이 판국에 저는 아직도 그런 소리를 듣고 산답니다. 제가 동안이기는 하지요. 얼굴은 동글동글, 볼도 통통하고 생김새 자체가 ‘학생스럽게’ 생긴 덕에 대학 때는 중학생으로, 사회 나와서는 고등학생으로, 지금은 가끔 대학생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긴 해요.
스물일곱 앳된 나이(요즘 추세로 보자면)에 결혼해서 서른에 딸을 낳았는데 임신을 한 순간부터 늘 그 말이 저를 따라다닙니다. 그때는 제가 봐도 그랬던 것 같아요. 배는 또 어찌나 빨리 부르기 시작하는지 임신 2개월 차부터 자리를 양보 받고 다녔지요. 어리게 생긴 것이 엄마가 된답시고 남산만한 배를 안고 다녔으니 선배들 입장에서는 애가 애를 낳는다는 말밖에는 할 게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놈의 꼬리표가 나이를 먹어도 없어지질 않네요. 이제 애도 아니고 예전만큼 어려보이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지금 만나는 사람들, 예를 들어 미국서 만나는 유학생 가족들은 저에게 그런 소리 안합니다. 편하게 말할 만큼 친분을 쌓지도 못했지만 제법 엄마 같을 테니까요.
그래도 선배들의 그 소리가 그다지 싫지는 않습니다. 듣고 있자면 왠지 선배들에게 어리광을 피우던 옛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고 엄살 섞인 댓글도 달 수 있으니까요. 또 내 과거의 한 구석을 공유하고 있는 그들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
한 번 쌓인 이미지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는 교훈을 가슴속에 담습니다. 아직 인생의 반도 안 살았는데 앞으로 만날 여러 사람들에게 긍정의 이미지를 새겨야겠어요. ‘애가 애를 낳은 여인’이라는 것보다는 의식이 깨어 있는 사람, 잘 웃는 사람, 사람과 술을 좋아하는 사람 뭐, 이런 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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