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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이야기/세계 여행 이야기

[칠레 푼타아레나스] 펭권도 털갈이를 한다고?

by 영글음 2011. 3. 3.

여행 세 번째 도시에서 노트북을 도둑맞았답니다. 그 탓에 푼타아레나스에서의 추억은 여행 당시 썼던 글 몇 줄과 머릿속에 담았던 장면이 전부이네요. 인간이 한두 살 적 어릴 때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그때를 기억할만한 수단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말을 할 줄 모르고 글을 쓸 줄 모르기 때문에 오로지 보는 것만으로 저장이 가능할 텐데 아무래도 한계가 있겠지요.

 

그런 점에서 본다면 비록 사진은 다 날아가고 없지만 언어로 형상화되어 있는 푼타아레나스의 느낌이나 분위기 등은 제법 살아 있으니 다행입니다. 가늘지만 아직도 나풀거리고 있는 추억의 실을 붙잡고 다시 그곳으로 가보겠습니다. ^^

   


푼타아레나스 풍경
 (사진출처: http://www.wolpy.com)

 

3, 여름을 막 지나온 이곳은 관광객이 한참 몰려들었다가 빠져나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한창 때는 남극 빙하를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을 텐데 제가 갔을 때는 비교적 한산하고 조용했습니다. 기온은 선선했답니다. 남극 주변치고는 춥지 않은 게 신기했지요. 누군가와 팔짱을 끼고 걷기에 딱 좋을 정도였다고나 할까요? 대기는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었고, 낮게 구름을 드리운 하늘은 도시를 더욱 한적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공원 한가운데 자리잡고 선 마젤란(포르투칼 탐험가, 마젤란 해협 발견) 동상 

 

푼타아레나스는 태평양과 대서양 사이의 마젤란 해협에 맞닿아 있는 도시입니다. 마젤란해협 전성시대엔 매우 번잡한 상업도시였다는데, 파나마운하 개통 후에는 비교적 한산하고 조용한 시골동네가 되었다고 합니다. 시내 공원에 가면 중앙에 대포를 앞세운 마젤란 동상이 서 있습니다. 마젤란 해협 때문에 그 동안 이 도시가 성장했던 것이 사실이겠지만, 칠레인들의 유럽세계를 향한 동경 역시 분명히 존재하는 듯합니다.

 

공원에 앉아 사람 구경을 하는데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중학생쯤 되는 여학생 한 무리. 그녀들은 무엇이 그리도 신나고 재미있는지 연신 웃음꽃을 피워냈습니다. 그들은 제 목에 걸린 카메라를 보더니 사진을 찍어달라는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10명 남짓의 여학생들이 일렬로 나란히 서서는 저마다의 포즈를 잡고 섰습니다. 하나, , 셋 찰칵! 찍히는 소리와 동시에 큰 소리로 인사하고 유유히 사라지는 그들.

 

칠레를 여행하면서 우리는 수많은 칠레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우리가 찍고자 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먼저 찍어 달라고 “포토 포토!”를 외친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예쁘게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그래서 찍힌 사진을 꼭 확인해야겠다는 집착이 없습니다. 그저 누군가의 여정에 자취를 남기고 추억이 되어주는 것에 만족하는 듯 했습니다. 그것은 간섭이 아닌 관심이었고 방해가 아닌 교감이었습니다

 


마우리씨오 브라운 박물관 입구 

 

‘팔라씨오 마우리씨오 브라운 - Palacio Mauricio Braun. 이곳은 19세기 이 지방을 주름잡던 양목장 소유자 일가의 집을 박물관으로 만든 곳입니다. 선주민이 1%에 불과한 칠레와 인근 아르헨티나 지역은 스페인지배 시절 ‘울 붐(wool boom)’이 일자 유럽 지주들이 몰려들어 양 목장을 건설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선주민의 머리, 고환 등에 현상금을 메겨 울 붐에 이어 ‘선주민 사냥 붐’까지 일으켰다고 합니다. 이 지방의 선주민들은 그렇게 몰살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빙하를 보기 위해 이 도시에 옵니다빙하는 산이나 호수 같이 다른 지역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펭귄은 보지 않더라도 빙하는 빼놓을 수 없는 여행지이지요. 5개월 간의 중남미 여행 중 제가 가장 후회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빙하를 보지 않은 것입니다. 12일인지, 23일인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장시간 트레킹을 해야 한다는 데 지레 겁을 먹고 포기했던 것이 두고두고 아쉽습니다. 살면서 그곳에 또 가게 될 일이 있을까요? 간다고 해도 그 때 보는 빙하는 6년 전 모습과는 다르겠지요. 6년 사이 많이 녹았을 것 같아요. 노트북 분실로 멋들어진 사진을 찍었다 해도 다 날려버렸을 것이기에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펭귄들의 안식처
, 세노 오트웨이로 들어서는 입구 

 

세노 오트웨이(Seno Otway)는 펭귄서식지로 유명한 곳이랍니다. 펭귄 투어에 참가하면 이곳에 갈 수 있어요. 펭귄은 9월경 육지로 올라와서 땅속에 둥지를 틀고, 짝짓기를 합니다. 암수가 양성평등하게 알을 품고, 또 부화된 후에는 번갈아 가며 아기 펭귄을 돌보아 줍니다. 그리고 3, 펭귄들은 다시 남극의 바다로 여행을 떠납니다. 불행히도 펭귄들이 한창 떠날 때여서 몇 만 혹은 몇 십만, 몇 백만 마리의 펭귄이 떼를 지어 이루어내는 장관은 볼 수 없었답니다.



 

  

아직 남아 있는 펭귄들은 먼저 간 놈들을 재빨리 뒤따르겠다고 털갈이를 하면서 조금씩 매끈한 피부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펭귄이 털갈이를 한다는 것은 이때 처음 알았답니다. 펭권을 만져보면 털도 없이 미끌미끌하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조금만 생각해 보면 펭귄도 조류이기 때문에 깃털이 있을 거라는 결론에 다다르지만 직접 보기 전까지 전혀 몰랐네요.

한 편에서는 펭귄 두 마리가 마치 남극의 미래를 속삭이듯 같은 곳을 바라보며 꼼짝 않고 있습니다. 때때로 해변의 펭귄들은 잔잔한 파도를 바라보며 일광욕을 즐기기도 합니다. 솜털을 듬성듬성 단 채 나란히 서서 바다를 보던 펭귄의 모습은 절로 웃음이 날 만큼 귀엽고 인상적입니다.


 


우리는 한참 동안 펭귄들을 구경했습니다
.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대지 위의 펭귄들도 자신의 보금자리에 침입한 사람들을 매우 신기한 눈으로 구경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자기네들끼리 '저 사람 좀 봐 웃기지 않냐'하면서 시시덕거리더니 궁금하다는 듯 뚫어지게 쳐다 보며 그럽니다. "너희들은 언제 남극에 갈 거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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