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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이야기/세계 여행 이야기

[칠레] 여행 중 첫 번째 도난, 노트북 안녕

by 영글음 2011. 3. 11.


제일! 가장! 최고! 최악! 등 같은 극단적인 표현에는 언제나 주관이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누구에게는 가장 멋진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최악의 것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5개월 간 여행을 하는 동안 어떤 도시는 기억에 오래오래 남는가 하면 어떤 도시는 다시는 발걸음도 들여놓고 싶지 않은 곳이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꼭 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푸에르토몬트 만큼은 후자였답니다.


소설이나 드라마에는 복선이란 게 있지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암시하며 일종의 징표 같은 것을 먼저 보여주는 것을 뜻합니다. 책을 읽거나 TV를 보다 보면 ‘아! 저게 복선이구나!’하고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답니다. 흑흑! 푸에르토몬트 자체가 복선이었는데 말이지요.






푼타아레나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세 시간쯤 날고 난 뒤 푸에르토몬트에 도착했습니다. 다시 시가지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고 한 시간쯤 더 갔습니다. 버스터미널을 나서자마자 길게 뻗어 있는 좁은 길을 따라 상점들이 복잡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얽히고설키어 하늘에 매달린 전깃줄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헝클어트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도 이상하게 활기차다기보다는 번잡스럽다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던 곳입니다.




 

길거리에는 덩치가 큰 개들이 마치 마약이라도 복용한 것처럼 모로 누워 자고 있습니다. 칠레 다른 도시에도 누워 있는 개들이 흔하긴 하지만 유독 이 도시에 더 많아 보입니다. 길 한복판에서는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당시 칠레에서 가장 급성장한 도시답게 대형 쇼핑몰과 판잣집들이 모순적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푸에르토몬트에는 위험한 거리와 위험하지 않은 거리가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빈부의 격차가 크다는 뜻이겠지요. 위험한 거리에 가면 좀도둑이 많다고 하네요.  위 사진에 나온 곳은 위험하지 않은 거리입니다. 깨끗한 건물과 좋은 옷을 차려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입니다. 거리마저 구분되는 사회 현실이 가슴 아프지만 여행객들은 늘 조심해야 하니 가급적 위험하지 않은 거리로 다니는 것이 좋겠습니다.  



거리에서 악사가 노래를 하며 돈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일부러 눈에 힘을 주고 자세를 잡아줍니다. 장발의 곱슬머리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배기에 숙소를 정했습니다. 그리고 가격흥정을 전혀 해주지 않을뿐더라 무척 불친절한 숙소 주인을 뒤로 한채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복잡한 시장거리로 나섰습니다푼타아레나스나 푸에르토몬트에 사람들은 눈만 마주치면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는데 이곳은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을뿐더러 자기도 먹고살기 바빠 죽겠다는 표정들입니다.

 

식당은 간간히 있었으나 어떤 음식을 파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데고 들어가 아무 거나 시켰습니다. 주문한지 얼마 안 되어 무뚝뚝한 주인이 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긴 쌀밥에 하나로 뭉쳐 질겨 보이는 고깃덩어리. 배가 고팠지만 입으로 넘어갈 것 같지 않았습니다. 햄버거나 시킬 걸 후회하면서 튜브고추장을 꺼내려고 가방을 찾는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의자 뒤에 걸어두었던 가방이 ‘뿅!’하고 사라졌기 때문이지요.

 

하늘 높이 날아가는 고추장과 현금 200달러, 한국어 여행가이드 책, 노트북! 여행하면서 미리 만들었던 홈페이지에 사진과 글을 남기려고 거금을 들여 구매했던 노트북이 시야에서 멀어지며 훨훨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어흑!

 

식당 주인이 우리 뒤편에 젊은 남녀가 들어와서 메뉴판만 보고 나갔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가게를 박타고 뛰쳐나갔건만 칠레 도둑들의 발은 어수룩한 우리보다는 훨씬 빨랐습니다. 여행객들은 항상 표적이 되니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되뇌었건만 결국 세 번째 도시에서 가장 비싼 전자제품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탓에 우리는 여행 내내 PC방을 돌아다니며 한글 깔기 작업을 여러 번 반복해야 했지요.

 


시내 거리만큼 복잡하지 않은 푸에르토몬트의바닷가 풍경

푸에르토몬트가 그렇게 나쁘기만 한 곳은 아닐 겁니다. 항구도시인 이곳에도 바다가 있고 또 속속들이 알고 보면 정 깊은 사람들도 있을 테고……. 어찌되었건 우리의 부주의로 이곳은 최악의 도시라는 낙인을 찍은 후 다음날 다른 도시로 가고 말았답니다. 노트북 대신 기록을 남길 ‘노트’와 가이드 ‘북’을 사기로 마음먹고 말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번 도난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