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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이야기/세계 여행 이야기

[칠레 여행기] 대륙의 끝 푼타아레나스

by 영글음 2011. 3. 1.

마흔 다섯 시간이 걸렸습니다. 일본 도쿄에서 미국 뉴욕을 거쳐 페루 리마, 다시 칠레 산티아고 그리고 푼타아레나스까지 도착하는데 꼬박 이틀 밤낮을 보낸 셈입니다. 한반도 어느 한곳에 막대기를 꽂아 지구의 핵을 뚫고 질주하면 그 반대편엔 칠레나 아르헨티나쯤 되는 나라가 나온다고 하지요. 그런즉, 칠레 푼타아레나스는 제가 떠나올 수 있는 한 가장 멀리 온 곳이었습니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가장 끝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이곳에 도착했던 밤, 비행기 창문으로 별 같은 빛들이 점점이 박히기 시작했습니다. 도시가 뿜어내는 빛이었습니다. 시골 버스 대합실 같았던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 공기를 가로질러 다가온 빙하의 냄새나 낯선 풍경은 두려움보다 설렘을 먼저 안겨 주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나라 칠레. 유럽을 비롯한 강대국 위주의 역사를 배운 우리에게 중남미 대부분 나라들이 낯설기만 합니다. 그나마 ‘한칠레 FTA’ 체결 후 종종 먹을 수 있었던 껍질이 잘 벗겨지지 않는 포도 덕택에 다른 곳보다는 가깝게 느낄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하나 있군요.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좋은 품질을 고를 수 있는 칠레 와인 말입니다. 지금까지 즐겨 마시는 와인이 대부분 칠레산이네요. , 지금도 생각나는 <1865, Cabernet Sauvigno>. 슬프게도 미국엔 없는 브랜드입니다.

 

공항에서 몇몇 사람들이 우리처럼 숙소를 찾는 사람들에게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장기 여행이라 숙소를 일일이 예약하는 일은 불가능했기에 그들이 무척 반가웠답니다. 그러나 원, , 쓰리 조차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손짓, 발짓 그리고 몸짓까지 대동하고 종이에 연필로 숫자를 써가며 가격협상을 한 뒤, 스무 살쯤 되는 아가씨를 좇아 봉고를 타고 호스텔에 갔습니다. 6인용 도미토리 방이었는데 벽이 온통 붉은 빛깔이더군요. 웬일인지 욕실에 찬 물이 잘 나오지 않은 덕택에 남극 주변의 파타고니아에서 뜨거운 맛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답니다.  

 

 

침대에 몸을 뉘인 첫날밤, 잠은 오지 않고 가슴만 뛰었습니다. 이제부터 지구 반대편의 삶을 엿볼 생각을 하니 머릿속으로 자꾸만 소용돌이가 치고 있었습니다. 길쭉한 나라 위로 총총히 펼쳐질 자연 그리고 사람. 기대와 설렘, 두려움과 근심이 교차했습니다. 그리고 칠레의 땅은 ‘이제야 날 보러 왔냐!’는 듯 넓은 가슴을 우리에게 열어주는 것 같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