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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이야기/세계 여행 이야기

[칠레] 푸에르토나탈레스에서 만난 아이들의 미소

by 영글음 2011. 3. 4.



스페인어로 푸에르토-Puerto는 항구를 의미합니다. 칠레 도시 중에는 '푸에르토OOO'라는 식의 이름이 많은데 모두 항구도시를 뜻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로 치자면 도시 이름이 부산항, 목포항 이렇게 붙여진 셈입니다. 나라가 길쭉한데 서쪽이 모두 태평양에 접하고 있는 까닭에 칠레는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가 무척 많습니다. 산보다 물을 더 좋아하는 저에게는 이 점이 참 인상적이었답니다.



일요일 오후, 찬찬히 시내를 둘러보았습니다. 한 성당에서 웅성웅성 사람이 모여 있는 듯해서 살짝 들어가 봤어요. 마침 부활절 준비로 한창 분주한 분위기였습니다. 성당은 유럽식의 고풍스럽고 웅장한 맛은 없습니다. 그래도 참석한 사람 중 1/3은 서 있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실내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과거 스페인이 남미를 점령한 후 여러 국가에서 가톨릭을 국교로 받아들였습니다. 각 나라마다 그것이 다양한 의미와 형태로 변형되어 흡수된 모습을 엿보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입니다. 성당 정면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라는 글귀가 담긴 성화가 십자가를 대신하고 있는 특이한 모습도 그렇지요 



성당을 나와 이곳 저곳을 떠돌다가 우연히 한 꼬마의 생일파티에 참석했습니다. 가족들, 친구들이 모여 생일을 축하하며 춤을 춥니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손수 풍선과 색종이로 벽을 꾸미고 과자, 빵 등으로 차려낸 식탁이 더없이 훌륭합니다. 특히 멀리서 온 이방인에게도 넓은 아량을 베풀어 음식도 권하고 사진을 찍자고 먼저 청하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너나없이 모두 친절합니다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열었다를 반복합니다. 햇빛도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서 마을은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자연, 그 속에서도 조화를 이루며 서 있는 집과 건물들, 항구에서 불어오는 소금바람 등 푸에르토나탈레스는 도시인에게 다소 생경한 모습을 선사하는 곳입니다. 안개비가 촉촉하게 내리더니 걷힌 후 무지개가 하늘을 채웁니다. 이렇게 크고 완전한 무지개는 그때가 처음이었답니다. ^^



이곳이 100년 전 나탈레스항구입니다. 20세기 초반엔 수많은 증기선이 드나들었을 텐데 지금은 갈매기들의 항구가 된 것 같습니다





갈매기들은 저마다 기둥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아 해가 떨어지는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네요.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dl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주기도 합니다. 바람과 햇살을 머금은 그네들의 표정이 무척 여유롭습니다.  

사람들이 빙하 투어를 위해 푼타아레나스에 모여들듯
, 푸에르토나탈레스에는 토레스델파이네를 보기 위해 들르는 곳입니다. 하루 코스로 간단하게 둘러볼 수도 있고 다양한 기간으로 트레킹에 참여할 수도 있답니다. 우리는 하루에 다 보고 말았지만 다시 간다면 일주일쯤 넉넉히 시간을 가지고 보고 싶은 곳이지요. 작년 봄 한 주간지 기사에서 이곳을 두고 “남미대륙을 북에서 남으로 달리는 안데스 산맥은 대륙의 끝자락 파타고니아 평원에서 길고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게 무척이나 아쉬운 듯 장엄한 대자연의 걸작을 만들어놓았다.”고 평했습니다표현마저 걸작이라 생각할 만큼 딱 들어맞는 비유입니다.  

 

 
 

사진출처www.livefortheoutdoors.com (왼쪽) / www.migranchile.com (오른쪽)

 

투어 버스창문을 통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평선을 보았습니다. 눈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둬야 할 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왔던 곳이나 앞으로 갈 곳이나 끝없이 펼쳐지는 들과 산, , , 나무, 나무, 나무. 그리고 만년설이 쌓인 높은 산맥들이 여기저기서 튀어 오릅니다.

 

토레스델파이네는 오랜 시간 빙하의 침식으로 이루어진 화강암 봉우리들의 집합체입니다. 높이가 2500m나 되는 가장 높은 봉우리를 비롯하여 중앙봉, 북봉 등 3개의 봉우리는 직접 보고 나면 말로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위용을 자랑합니다. 하늘을 찌를 듯하면서 견고하게 버티고 선 산맥, 빙하가 깎아 내린 바위의 부유물로 인해 옥색이 된 호수, 만 이천 년 전에 만들어진 밀로돈 동굴 등 혼자 보기엔 아까운 절경이 담긴 곳입니다.

 

불행하게도 노트북 분실로 인해 이곳에 대한 추억은 이 글, 여기까지 정도이지 싶습니다. 사진이 없어진 뒤, 가물거리는 추억과는 반대로 토레스델파이네에 대한 애틋함과 아련함이 새록새록 더해지면서 우리는 카메라가 아닌 우리의 눈 속에 자연과 사람을 담는 법을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를 잃고 나니 하나가 생겼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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