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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이야기/세계 여행 이야기

[칠레] 칠레 대학생들의 새내기 신고식

by 영글음 2011. 3. 18.



발디비아 강 건너편에 테하
(Teja) 섬이 있습니다. 그곳에 오스트랄 대학교가 있지요. 걷기 좋은 캠퍼스라는 명성답게 입구부터 양 갈래로 길게 늘어선 나무가 우리를 반기며 인사합니다. 길을 걸으며 책을 보는 이도 있고, 연인인지 두 손을 꼭 잡고 가는 남녀학생도 있습니다. 어느 대학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지요. 그런데 조금 생소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한 여학생 무리가 얼굴과 옷에 온통 페인트와 밀가루쯤으로 보이는 하얀 가루를 뒤집어쓴 채 웃고 떠들며 지나가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 모습을 보니 푸에르토 몬트 거리에서 만났던 비슷한 차림새의 젊은이들이 생각났답니다. 그땐 당당하게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그들이 무서웠어요. 거지나 집시가 아닐까 생각해서 멀찌감치 피해버렸습니다. 앞으로 몇 달이나 남은 여행을 위해 꼭 그래야 했지요.

 

그런데 이 여학생들은 거지처럼 보이지는 않더라고요.  천진난만한 표정에 무척 즐거워하는 듯했습니다. 기념으로 사진을 한 장 찍고 헤어졌는데, 나중에 다른 도시에서 만난 칠레 친구가 해준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해가 되더군요. 그것은 일종의 대학 새내기들이 치러야 하는 신고식 같은 것이었답니다.

 

선배들이 신입생에게 이렇게 거지(?) 치장을 해준 뒤 거리에서 구걸을 시킨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웃으면서 돈을 조금씩 보태준데요. 그렇게 푼돈이 모이고 나면 책이나 가방, 학용품을 산다고 합니다. 우리 대학들이 대부분 술을 진창 마시는 것으로 신고식을 하는데 비하면 훨씬 생산적인 방법입니다. 그런 퍼포먼스를 통해 자립심도 키우고, 돈도 벌고, 같은 학번끼리 친해질 수 있는 계기도 되지 않을까요? 1년 후 이 학생들은 선배가 되어 다른 신입생에게 구걸을 시키겠지요. 자기들이 겪은 거리 무용담도 곁들여 가면서요. “작년에 나는 말이야~

 

캠퍼스 구내식당에서 학생들 한 무리를 사귀어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대뜸 ‘삼숭(SAMSUNG)’과 ‘휸다이(HYUDAI)’를 안다고 합니다. 스페인어로 두 기업의 발음이 그렇답니다. 좀 웃기지요? 학생들은 우리에게 칠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칠레산 포도 이야기가 나왔고 다큐멘터리 영화 <칠레전투>를 통해 칠레의 현대사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당시 집권했던 라고스 대통령이나 과거 군사정권의 피노체트 이야기를 꺼내며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짧은 영어와 스페인어 실력이 참 아쉬웠던 순간이었답니다. -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