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런저런 이야기/세계 여행 이야기

[칠레] 칠레에서 미혼모를 흔히 볼 수 있는 이유

by 영글음 2011. 3. 22.

유스호스텔에서 조금 더 싼 곳으로 숙소를 옮겼습니다. 호스텔이 시내 중심가에서 너무 멀기도 했지만 남녀 방이 따로 되어 있어 남편과 밤새 떠들 수 있는 기회가 없었거든요. 새로 옮긴 숙소는 대로에서 골목으로 들어가는 모퉁이에 있었습니다.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계단을 올라가면 3층에 주인이 살았고 4층에는 여러 방들이 개미집처럼 펼쳐져 있는 곳이에요 하룻밤 비용은 2인용 침대가 있는 방 하나에 10,000페소, 이곳에서 우리는 닷새를 더 묵었습니다.



산티아고 시내에 있는 숙소가정 집에 있는 방 몇 개를 여행객에게 빌려줍니다.  


주인집에는 딸 셋과 어린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딸들의 나이는 대략 10대 후반과 중반 정도였는데 아들은 한 세 살 정도로 아주 어렸지요. 가족들은 우리에게 큰 관심을 보였어요. 비록 그녀들이 영어를 못해서 서로 웃음밖에 주고받을 것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주방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는 숙소집 첫째 딸

 


숙소집 둘째 딸, 셋째 딸 - 지금은 이 아이들도 어른이 다 되었겠네요.


특히 둘째 딸은 우리가 주방에서 한국 음식을 만들 때마다 와서는 이것저것 묻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답니다. 이 집 막내 아들인줄 알았던 꼬마가 둘째 딸의 아들이라는 것

 

“우와, 남동생인줄 알았어요. 결혼한 줄 몰랐네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기해하자 둘째 딸은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합니다. 결혼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아이 때문에 무턱대고 결혼했다 생각하는 우리가 웃겼나 봅니다. 결혼하지 않고 애를 낳았다면 미혼모? 우리 역시 놀란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동안 품어왔던 가치관에 비춰보자면 미혼모인 그녀가 당당한 것이 어색하긴 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그것은 남들에게 숨겨야 할 그 무엇이었으니까요.

 

여느 아이와 마찬가지로 입과 손에 때가 꼬질꼬질하게 묻은 꼬마는 까만 눈을 반짝 빛내며 엄마 품에 안깁니다. 그리고 배시시 웃는 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럽습니다. 모든 가족의 귀여움을 독차지할만한 미소이지요.

 

 

칠레에서는 가톨릭 교리에 반대된다는 이유로 이혼이 불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정식으로 결혼한 부부가 헤어지고 싶으면 이혼 대신 결혼을 무효화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변호사를 선임하여 결혼식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밝혀야 한다고 해요. 그러지 않으면 떨어져 살 수는 있어도 법적으로는 부부이기 때문에 재혼을 할 수가 없다나요? 가끔 가난한 사람들은 변호사 비용이 없어 헤어지고 싶어도 헤어지지 못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답니다.

 

이런 이유로 칠레에는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여성이 많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이들의 삶이 불행하지는 않습니다. 부모, 형제에게 감정적, 경제적인 지원을 받으며 함께 살기도 하고 일을 하면서 돈도 법니다. 가끔 법적인 유산분배가 문제가 되고 있지만 사생아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미혼모 스스로가 떳떳하지요.

 

이집 둘째딸 말고도 저희는 칠레 여행을 하면서 미혼모를 몇 명 더 만났답니다. 모두들 결혼하지 않은 아이 엄마라는 것을 당당히 밝혔고, 부모의 도움 아래 아이를 키우고 있었지요. 칠레 여행 후 지금까지 연락을 하고 있는 루이스도 헤어진 여자친구와의 사이에 딸이 하나 있더라고요. 우리 딸내미와 나이가 비슷해요.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흔치 않은 풍경이지만, 이혼도 못하고 무효화 절차가 복잡한 칠레에서는 결혼에 대해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앞날은 누구도 모르는데 차라리 동거를 하거나 미혼모가 되는 게 속 편한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아이를 책임 있게 키울 수만 있다면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

* 잘 보셨다면 추천 버튼 눌러주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