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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내가 읽은책

[조선공주실록] 화려함 뒤에 감춰진 질곡의 삶

by 영글음 2010. 7. 29.



조선 공주에 관한 책이라고? 역사학자 신명호 교수가 쓴 『조선공주실록』을 접하고서야 무릎을 쳤다. 그래, 조선시대에 공주도 있었겠구나! 역사 기록이 왕 중심이다 보니 사극 드라마에서도 왕권을 둘러싼 세력다툼과 권모술수 또는 왕비와 후궁 간 암투는 인기 소재다. 하지만 대부분 공주 야이기는 ‘포졸 1’ 정도의 엑스트라 신세라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만큼 기록이 없고 역사의 주인공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공주와 옹주는 116명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제한된 사료를 바탕으로 어렵사리 공주 7명의 삶을 부분적으로나마 복원해냈다. 비록 ‘했을 것이다’라는 추측성 어미가 종종 등장해 진실여부에 관한 아쉬움을 남기긴 하지만 자료의 한계를 감안한다면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다.

왕의 딸로 태어나 사랑을 듬뿍 받았던 공주들. 문종의 딸 경혜공주는 계유정난 후 남편과 동생 단종을 잃고 노비신세까지 되어야 했다. 효명옹주는 아버지 인조의 편애를 받으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저주혐의를 받고 귀양을 갔다가 자식도 없이 쓸쓸히 세상을 떠난다. 영조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던 화완옹주는 유배되었다가 정조의 배려 덕에 그나마 옹주로서 인생을 마친다. 국익을 위해 적국의 남자와 정략적으로 결혼해야 했던 효종의 의붓딸 의순공주와 고종의 딸 덕혜옹주는 삶 자체가 기구하다.

이 책은 특별한 사연이 있는 7명의 공주, 옹주 이야기만 다루고 있다. 하지만 만약 우리 역사에 공주에 관한 기록이 잘 되어 있었다면 더욱 기가 막히고 가슴 아픈 이야기가 넘치지 않았을까. 아들이 아닌 딸로 태어났기에 겪었을 애환, 그것도 왕의 딸이기에 자신의 미래가 정치적으로 결정되어야 했던 현실이 있었을 테니 말이다. 화려했던 궁중생활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질곡의 삶은 더욱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8년 전 늦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가 세상을 떠났다. 그땐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저 뉴스로만 생각했었는데 『조선공주실록』을 읽고 보니 마음 한 구석이 무척이나 시리게 아파온다. 14세의 나이로 강제 일본유학길에 오른 뒤 1962년 정신적 상처와 충격을 안고 고국으로 돌아왔던 덕혜옹주. 어쩌면 그녀는 조선시대 비운의 공주 대표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역사가 공주들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사실을 새겨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이름조차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공주들의 슬픈 넋을 위로하는 길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