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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내가 읽은책

[독소, 죽음을 부르는 만찬] 비만을 부르는 비극

by 영글음 2010. 7. 28.

※ 작년 10월에 썼던 글이다. 10개월 후 읽어 보니 생각이 바뀌기도 하고 고치고 싶은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지만 '불끈'하는 마음을 억누르고 그대로 옮겼다. 이것 또한 내 발자취가 되리라.



시사전문 기자이자 다큐멘터리 기획자인 윌리엄 레이몽은 프랑스인이다. 그가 이 책을 쓴 계기는 비만한 미국인 전형이었던 햄버거 몸매(배와 허벅지 등 몸의 중심 부분이 과도하게 살찐 몸매)가 프랑스인에게도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서라고 한다. 
 미국에 와보니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몸매다.

[독소]는 비만을 비롯하여 암, 심장병, 당뇨, O157:H7 식중독 등 현대 유행 질병의 원인을 우리 밥상에서 찾고 있다. 이 책은 단순히 문제가 되는 화학물질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책이 아니다. 그것이 구조적으로 어떤 메커니즘으로 우리 식탁을 잠식하고 있는지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먹을거리의 생산, 유통, 가공의 경로를 탐사보도 하듯 파고들어 깊은 곳 진실의 내면으로 안내하는데 현실은, 아주 참혹하다.  

하필 이 책을 읽기 바로 전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으며 기아로 고통 받는 사람들 이야기를 읽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사실은 기아와 비만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같다는 것이다. 바로 무한경쟁 속 시장자본주의 때문이다. 이윤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돈을 벌어야 하는 식품산업업계에서 비만 같은 질환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많이 먹는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면 그 뿐이다. 그들에게는 어떻게 하면 곡식을 많이 거두어들일까,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싼 원료로 식품을 만들어 이윤을 극대화하는가가 관건이다. 

위대한(?) 발명 콘 시럽, 먹보이론

각종 호르몬과 항생제로 범벅이 된 육류, 싱싱하게 보이려고 방사선까지 쬔 채소, 공장식 대량생산기술, 고객의 눈을 가리는 신경 마케팅, 농약잔류물에 트랜스지방, 각종 식품첨가물……. 독소를 만들어내는 많은 시스템 중에서도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것은 ‘HFCS’였다. 남아도는 수백만 톤의 옥수수로 만들어낸 액상과당, 일명 ‘콘시럽(HFCS)’의 실체는 가공할만하다.

대개 사람들은 너무 단 음식을 많이 먹고 나면 괜히 속이 미식거리고 느끼해져 토하기도 한다. 그런데 설탕 대신 감미료로 콘 시럽을 사용하면 그런 생각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고 한다. 1~2리터짜리 콜라를 몇 병이고 마실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콘 시럽이 당질을 많이 먹었을 때 몸에서 보이는 저항성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퍼 넣어도 계속 들어가게 만드는 HFCS가 인간에게는 비만 및 각종 질환을 선물하고 업계에게는 돈을 안겨다 주었다.

먹보이론도 무섭다. 미국에 와서 놀란 것 중 하나는 1인분 식사량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맥도널드 등 패스트푸드점의 햄버거와 콜라의 크기도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어마어마한 양이었고 아무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시켜도 도무지 혼자서 먹기에는 음식이 차고 넘칠 정도였다. 우리 가족은 햄버거는 둘이서 하나를, 식당에서는 항상 1회용 용기에 남은 음식을 싸가지고 와서 데워 먹었지만 미국인들은 앉은 자리에서 뚝딱 잘도 해치운다.  

1인분 식사량이 늘어난 것도 상업적 마케팅의 결과라고 한다. 더 먹고 싶지만 왠지 2개를 시키면 타인의 눈치를 보게 되는 심리를 이용하여 양을 늘린 것이. 이것은 이제 미국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식탁 위해 정치하기엔 아득한 현실

윌리엄 레이몽은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삼시 세끼를 위해 어떤 식품을 선택하느냐가 투표소에 가는 것 이상으로 정치적인 행위가 되었다고 말한다. 우리의 식생활을 거대 식품회사에 맡겨둘 수 없기에 한 사람 한사람의 결단이 중요한 때라고 역설하면서 아직은 가능하다고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고 글을 마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의 밥상을 바꾸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아무리 희망이 있다고 말해도 그것이 허황된 꿈으로 보일만큼 현실이 참혹하기 때문이다. 그저 하루 입에 풀칠하는 것도 힘들 지경일 사람들에게 크기가 큰 맥도널드 햄버거는 신이 내려주신 선물일 수 있다. 선택의 기회가 제한적인 빈민, 저소득층에게는 유기농식품은 언감생심 꿈에도 못 꿀 단어가 아닌가.

학교에서 주는 생활비로 몇 년 간 공부하는 남편 뒷바라지해야 하는 나도 식탁을 차릴 때에 얼마나 ‘직접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래도 현실을 직시하는 게 문제해결의 시작이라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가슴을 쓰려내려 봅니다. 밥상 위의 음식을 볼 때마다 책 내용이 떠오르게 하는 아주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책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