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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내가 읽은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기아는 투쟁의 대상이다

by 영글음 2010. 7. 22.
사람이 죽는 이유는 많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비참하게 죽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세상에는 더욱 끔찍하고 처참한 죽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 생존의 기본적인 욕구마저 무시당하고 죽음으로 내몰리는 삶이야말로 참으로 불쌍하기도 할 뿐더러 존재 가치를 존중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일부 아프리카만의 이야기일까? 아니다. 불행히도 전 세계 각지 인구의 절반, 약 8억 5천만 명이 굶주림의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다. 우리가 자연의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있을 지금도 하루에 10만 명,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못 먹어서 죽어 간다고 한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전체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있다는 사실이다. 한술 더 떠 독일 등 일부 유럽국가서는 건강한 소 40만 마리를 도살하여 폐기처분하겠다는 결정을 했다고 한다. 자국 축산업자 보호라는 명목아래 시행되는 가격보장 정책의 일환으로.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이었던 장 지글러가 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이 슬프도록 기가 막힌 현실을 낱낱이 파헤치며 우리가 학교에서는 배우지 않는 불편한 진실을 알리고 있다.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형식으로 다소 쉽게 풀고 있는데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워진다. 

다시, 책 제목의 물음부터 시작해 보자. 세상에는 왜 굶주리는 사람이 있을까? 더 좁혀볼까? 왜 북한 어린이들은 못 먹고 있을까? 왜 옆 반 아무개는 점심을 싸오지 못할까? 쉽게 생각하면 돈이 없어 음식을 구하지 못해서겠지만 그것이 결코 굶는 자들의 잘못은 아니라는 게 중요하다. 

기아의 원인은 다양하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돈을 제대로 벌 수 없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부터 시작해서 체제, 종교, 이념 갈등으로 빚어지는 전쟁, 선진국에서 내뿜는 산업 폐기물이 만드는 환경오염, 이로 인한 사막화, 지구 온난화……. 불평등을 더욱 부채질하는 세계금융자본, 더 나아가면 굶주림을 국가 테러의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식량 가격이나 생산량의 결정이 일부 힘센 국가가 좌지우지한다는 사실 또한 가난한 나라의 기아해결에서는 넘을 수 없는 큰 장벽이다. 

책은 이런 구조적인 모순을 깨기 위해 노력했던 여러 사람들의 행적도 소개하고 있다. 칠레의 아옌데 대통령, 부르키나파소의 상카라 대통령.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개혁이 꽃을 피우기도 전에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미국과 프랑스의 사주를 받은 이들에게 살해된 것이 그 이유다.  그 후 각 나라의 기아는 원상복귀된다. 깨부수고 바로 세우려 해도 국가와 국가 간의 이익관계가 달동네 전깃줄처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세계 정치와 경제 속에서 그들은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기아에 관한 보고서가 아니다. 작년 10월 금융위기 이후 조금 주춤하기는 하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강대국들의 신자유주의속에서 더욱 악화되는 양극화의 폐단, 분배의 모순을 밝히고 있다. 결국, 기아도 정치적인 문제였다. 

장 지글러는 책의 말미에서 ‘혁명적인 행동은 인도적인 구호를 뛰어 넘는다’고 하하며 원조보다 개혁을 먼저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직접적으로는 비인간적인 시장원리주의 즉 신자유주의를 틀에서 벗어나 각 나라가 자립적인 경제를 가꾸려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말이다. 현상을 해결하기 전에 원인을 해결해야 근본적인 문제가 사라진다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개인에 불과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싶어 무력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남긴 밥 한 끼가 몇 명을 먹여 살린다’는 식으로 돈을 모으고 긴급구호 활동으로 기아를 해결하기에는 문제가 간단치 않아 보인다. 부족한 자원으로 누구에게 먼저 밥을 줄 것인가 하는 것도 새로운 선택의 문제이다. 가난한 나라일수록 정치는 부패하여 내가 보낸 만원이 정말 가난한 사람들 입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원조의 손길이 끊기면 당장 눈앞의 생명이 사라질지 모른다. 더 큰 대의명제가 해결되는 동안 누군가는 그들의 입속에 빵을 넣어주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사실은 ‘기아는 원조의 대상이 아니라 투쟁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세계를 주무르는 시장만능주의 경제체제만 바뀌어도 슬쩍 해결의 기미가 보이는 투쟁해야 할 대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