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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내가 읽은책

[백년 동안의 고독] 한세기 동안 이어지는 삶의 투쟁

by 영글음 2010. 7. 16.


문화적 차이를 느끼기 싫어서, 정확히 집어내자면 읽어도 교감이 잘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국 소설을 외면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지름길일 터. 피하니까 모르고 모르니까 더 손에 잡기 싫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세상으로 나가는 길은 자꾸만 좁아질 것 같았다. 완벽히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저 느낄 수 있는 만큼만 느끼겠다고 기준을 낮추었더니 한결 편했다.

[백 년 동안의 고독]. 난생 처음 접한 남미 소설이다. 이 책은 100년 동안 6세대를 거치면서 벌어지는 한 가문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1세대 주인공인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마콘도’ 마을에 정착하여 부인 ‘우르술라’와 함께 가문을 일궈나간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대물림되는 이름, 성격, 그리고 그들이 운명처럼 받아들인 고독 탓에 100년 지난 후 가문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만다.

책을 읽다 보면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사실과 허구가 한데 뒤엉키며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로 쑥 빨려 들어가게 된다. 술집 카운터를 머리 위까지 들어 올린 뒤 거리에 던져버린 호세 아르카디오, 어느 날 하늘로 올라간 미녀 레메디오스, 4년 하고도 11개월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내린 빗줄기, 죽은 자가 다시 나타나 함께 고통을 느끼고 살아가는 이야기……. ‘마술적 리얼리즘’이라 부르는 이 독특한 표현 방식 덕택에 이름이 비슷한 주인공들 탓에 머리가 혼란스러워도 지루해질 시간이 없다.

과장과 환상이 반복되는 등 다분히 신화적인 요소가 강한데도 이 소설이 현실감 있는 생명을 갖게 되는 것은 역사적인 배경 덕분이다. 중남미 독립이후 전역에 걸쳐 펼쳐진 자유파와 보수파의 대립과 갈등, 바나나 회사가 노동자들의 권익을 묵살하기 위해 3천명이 넘는 사람들을 학살하고도 덮어버린 일 등 당시 사회상이 소설 곳곳에 잘 장착되어 있다.

이를 통해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마콘도로 대표되는 중남미에 찾아든 제국주의의 수탈과 독재자의 학살을 까발리고 있다. 이 작품을 인정받아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펼쳤다는 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로운 표현기법에 흠뻑 매료되어 읽긴 했지만 [백 년 동안의 고독]은 결코 쉬운 책은 아니다. 특히 나처럼 한국 소설에 익숙해진 독자에게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책을 읽은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선뜻 리뷰를 쓸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도 뭐라 쓸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경험은 또 다른 마술적 리얼리즘을 선보이는 보르헤스 같은 작가의 책을 손쉽게 내 앞에 이끌어 줄 것 같다. 색다른 시도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