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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내가 읽은책

[사람풍경] 정신분석 책에 사람 향기를 담다

by 영글음 2010. 7. 20.

심리여행 에세이 [사람풍경]. 수식어 그대로 이 책은 인간의 여러 감정에 대한 정신분석 서적이자, 유럽과 오세아니아 등지를 돌아본 여행기이고, 김형경의 삶이 녹아든 에세이다. 엄밀히 하자면 ‘여행과 인생을 매개로 한 정신분석 서적’ 쯤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책 한 권에 이 세 가지를 그토록 쉽고도 절묘하게 버무려낸 작가 김형경은 분명 솜씨 좋은 요리사다. 그녀가 인간의 마음을 알기 위해 이십대부터 심리학, 정신분석 책을 즐겨 읽었던 덕택일 것이다.



미국 오기 전, 교보문고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인데 제목에 ‘사람’ 어쩌고 하는 게 들어있어서 괜스레 뒤적거리다가 덜컥 사버렸다. 실은 푸른빛으로 펄이 덮인 표지도 맘에 들었을 뿐더러 김훈과 정혜신이 쓴 추천의 글도 한 몫 했다.

책은 ▲무의식, 우울, 분노 등 기본 감정들부터 시작해 ▲의존, 중독, 질투 같은 삶의 생존법들 ▲자기애, 친절, 용기 등 긍정적인 가치까지 인간의 여러 감정을 정리했다. 현상과 본질 즉, 사람의 행동 속에 숨은 진짜 심리를 잘 설명해준다. 

[사람풍경]에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건 역시 사람이다. 작가가 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엇보다 김형경의 과거, 현재, 미래가 담겨 있다. 그래서일까? 설명하는 심리학 대신 공감하는 심리학이 가능해진다. 김형경 소설의 근간이 어디서 왔는지도 살짝 엿볼 수 있는 건 덤이다.

작가는 무의식을 ‘우리 생의 은밀한 비밀 창고’라고 표현했다. 인간은 세 살까지 형성된 인성을 중심으로 그리고 여섯 살까지 배운 관계 맺기 방식으로 평생을 살아간다고 한다. 결국 어릴 때 다져진 인성이 무의식에 깔려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인데 그 과정에서 엄마의 역할은 무척 중요하다. 무의식뿐 아니라 여러 심리에서 엄마와 엄마가 만드는 환경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문득 나를 돌아본다. 이제 막 세 돌 반을 지난 내 딸에게 나는 과연 어떤 엄마였을까? 내 방식이 모범답안이 아니었으면 어쩌지.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남편과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가 안쓰러워지기도 했다. 유독 그 무거운 짐을 엄마에게 지워주는 조물주가 조금 미워졌지만 피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나는 딸에게 최선을 다해 사랑을 줘야 한다.

우리가 선의로 베풀었던 감정도 베일을 벗기고 나면 전혀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칭찬은 타인을 조종하는 생존법이며 유머나 웃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대표적인 방어기제라고 한다. 남들을 위한다고 했던 행동도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세상을 살아내는 한 방법이라는 사실에 설핏 웃음이 난다. 이기적인 것과 이타적인 것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이다.

다시 돌아와 [사람풍경]을 여행서라는 관점으로 보자. 흔히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한다는 사람이 많은데 김형경이야말로 여행을 통해 자신 안의 진정한 자신을 발견한 것 같다. 그래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며 정의롭기도 하고 비겁하기도 하고 이기적이기도 하고 이타적이기도 하고 그런 얼룩덜룩하고 울퉁불퉁한 존재로서 존엄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241p 자기애 中)

이 책은 자신이 왜 그러고 있나 모르는 사람, 어느 길로 가야할지 막막한 사람, 타인이든 자신이든 사랑하고 싶은 사람 그리고 스스로를 똑바로 바라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