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문화 수준이란 결국 그것의 터전을 낳고 함께 즐기는 전체 국민의 안목만큼, 정확히 그 눈높이만큼만 올라설 수 있다 (p 4).”
동양사학,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하고 미술관 큐레이터 등을 거쳐 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었던 오주석이 이 책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옛 그림 속에 녹아든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옛 사람의 눈과 마음으로 그림을 보라는 것이다. 양반과 쌍놈이 있고 남녀가 유별했던 그 시절, 그림 한 점에도 온 정신을 기울여 감상하고 혹은 웃었을 옛 사람이 되어야 화선지, 비단에 스며든 한국의 정신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김홍도를 오랫동안 연구한 까닭에 책에는 그의 그림이 자주 등장한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자주 보던 것들이라 반가웠다. 하지만 오주석의 친절한 설명을 접한 후에야 비로소 전구에 불빛이 들어오는 경험을 하고 말았다. 풍속화 <씨름>만 해도 그렇다. 그 안에는 씨름판에서 현재 누가 이기고 있는지가 드러나 있으며,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초조해하는 자들의 표정을 보았을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전율이 일었다.
<벼타작>은 또 어떤가. 김홍도는 같은 제목과 내용을 양반용, 서민용 두 가지로 그렸는데 비교하면 무척 재미있다. 양반용에서 마름은 권위적이고 근엄한 자세를 하고 있고 일꾼은 흥이 없어 보이는 자세이지만 서민용에서 마름은 술 한 잔 걸친 듯 자세가 망가져 있고 일꾼은 즐거운 표정이다. 수요자에 따라 달리 그린 그림, 오늘 날로 말하자면 <1:1 고객 맞춤 서비스>인 셈이다.
안타깝게도 오주석은 지병으로 약 5년 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남긴 특강은 언제나 열려 있다. 옛 그림의 진면목을 알고 싶은 사람, 우리네 전통 문화의 숭고함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이다. 그리고 책을 덮을 때쯤이면 우리는 우리 문화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데 일조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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