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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이야기/세계 여행 이야기

[볼리비아] 수크레에서 무료 급식을 도운 사연

by 영글음 2011. 7. 19.

2005년 우리가 여행을 할 당시, 볼리비아 수크레에는 한국 가정이 거의 없었습니다.  시내에서 사진관을 하는 우철이네와 선교사댁 두 가정, 독일인 남편과 사는 영자 아주머니네 이렇게 네 가족이 전부였지요. 앞 포스팅에서 영자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일류병원(?)에 입원했던 사연을 소개했는데, 어쩌다 보니 수크레에서 우철이네와 선교사님 댁에 머물면서 숙소를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한국과 한국 사람을 그리워하는 교민들의 따뜻한 마음 덕분이었답니다 

이틀이나 신세를 졌던 정만섭 선교사님은 지금 이 세상에 안 계십니다. 여행을 마치고 몇 년 뒤 안부 차 전화를 드렸는데, 급성백혈병으로 먼저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고 해요. 마음이 무거웠지만 좋은 곳에서 편히 쉬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부부는 특별한 종교가 없습니다. 하지만 선교사님 댁에 머물면서 타 종교에 대한 예의를 차려야겠다는 생각에 매일 아침 성경 기도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또 하나, 일손을 거든 것이 있으니 볼리비아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아침 무료급식 봉사였답니다.

 


정 선교사님은 부인 선교사님
, 두 대학생 딸과 함께 매일 아침 무료급식을 하고 계셨습니다. 아침 식사라고 해 봤자 넓적한 빵 하나에 커피 한 잔(어린이들에게는 차 한 잔), 쿠키 약간이 전부였지마는 가난한 수크레 주민들에게는 소중한 양식이 되어주었을 것입니다.
 





무료급식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주민들은 시간이 되면 각자 커피나 차를 받을 컵을 들고 줄을 서기 시작합니다. 역시 생활력 강한 여성과 엄마를 따라 나선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아이들은 옷의 앞 부분을 펼쳐 쿠키를 받기도 합니다.


부스 안 보라색 옷을 입은 사람은 저(^^), 옆에 계신 분은 故 정만섭 선교사님입니다





일부는 받은 아침 식사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일부는 길거리에 자리를 잡고 바로 먹기 시작합니다




이곳 무료 급식이 끝나면 장소를 옮겨 대학생들을 위한 급식을 합니다. 대학생쯤 되면 자존심 때문에 무료 급식을 받지는 않지만 실상은 밥이 없어 굶는 아이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간단하지만 식탁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아침을 먹을 수 있는 곳에서 선교사님네 두 딸들도 친구들과 앉아 같이 식사를 합니다. 두 분의 섬세한 배려가 돋보이는 부분이었습니다. 우리도 이 곳에서 똑 같은 빵과 커피로 아침을 먹었답니다.



비정기적으로 헌 옷 배분도 했습니다. 신발이나 옷 등을 맞는 이들에게 나눠주는 건데, 한 꼬마 아이가 자꾸 헌 팬티를 가지려고 하자 엄마가 무지막지하게(?) 아이 손에서 그걸 빼앗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한두 개씩만 가질 수 있으니 더 좋은 걸 갖게 하려는 모성 때문이었지요.

오랜 세월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중남미 국가를 여행하다 보니 종교는 세력을 위한 도구'라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자신들의 세를 늘리기 위해 강요했던 종교, 그 속에서 거행되던 탄압. 역사적으로도 종교를 이유로 진행된 전쟁이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두 선교사님의 삶을 엿보면서 종교의 긍정적인 면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선교 활동이 중심이 된다는 해도 자신의 이익에 앞서 남들을 생각하고 봉사하는 마음은 결코 쉽지 않은 법이잖아요

3년 전 즈음, 한국에 있을 때 안 입는 옷을 정리하다 보니 볼리비아 수크레 아이들의 얼굴이 눈에 밟혀 전화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정 선교사님 소식도 알게 되었지요. 할 말을 잃은 저에게 오히려 밝은 목소리로 반가워 해주셨던 선교사님이 떠오릅니다. 남은 가족들은 여전히 같은 곳에서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옷을 보내드린다고 하니 무척 기뻐하셨어요. 큰 상자로 두 개 가득 채워 거금 7만원을 주고 지구 반대편 볼리비아까지 보냈습니다. 우리에겐 그저 유행 지나 더 이상 입기 싫은 옷이었겠지만 누군가에게 작은 웃음을 선사하는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여행 때 찍었던 정 선교사님 사진도 인화해서 보내드렸네요.

 

그 후로도 시간이 꽤 흘렀기 때문에 선교사님이 아직도 수크레에 계실지, 의대생이던 두 딸들은 의사가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긴 시간을 함께 한 것도 아니지만 5개월의 중남미 여행 중에서 소중한 추억과 가르침을 전해주신 것만은 분명합니다. 기회가 되면 수크레는 꼭 한 번 다시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