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네루다
칠레에는 네루다의 집이 여러 곳에 있습니다. 산티아고, 발파라이소 같은 큰 도시에도 있는데 작은 바닷가 마을에 있는 집이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곳이 바로 [이슬라 네그라]랍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안개가 자욱한 골목에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바닥은 온통 흙길입니다. 발파라이소에서 버스를 잡아타고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을 들여왔건만 이곳은 참 딴 판입니다. 길을 따라 들어가면 길 밖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 같은 묘한 정적이 공중에 떠다니는 물기를 한껏 빨아들입니다.
네루다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입장권을 사야 합니다. 10명 단위로 묶여 집에 들어갈 수 있지요.
나무숲을 지나고 나면 네루다의 집이 나옵니다. 붉은 지붕의 집과 그 외 여러 채가 바다를 아주 가깝게 두고 마주한 언덕에 서 있는데 현재 박물관으로 쓰입니다. 집에 들어서면 마당 한가운데 기차 같은 게 놓여 있습니다. 증기를 내뿜는 굴뚝이 있는 것이 옛날 물건이지요. 네루다의 아버지가 철도노동자였는데 고향에서 일부러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파블로 네루다와 그의 세 번째 부인 마틸데의 묘지
이 집은 그가 살아생전 마지막 집필을 했던 곳입니다. 죽어서도 이곳에 머물길 원해 마당 한 곳에 네루다와 부인 마틸데의 묘지가 바다를 바라보며 있습니다. 하지만 죽은 뒤 바로 온 것은 아닙니다. 이 집은 군부 정권에 의해 몰수되어 폐쇠되었다가 1993년 민선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네루다의 유해를 이곳으로 옮겨주었다고 하네요. 딱 2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셈입니다.
신발 모양의 빈 술병
병 속에 든 돛단배, 병 입구가 좁은 데 배를 대체 어떻게 넣었을까 한참 고민했던 기억이...
시인이 수집광이었던 덕분에 집안에 들어가면 뱃머리 장식, 병 속 돛단배, 아프리카 가면 등 다양한 수집품들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내부 사진촬영을 금하고 있어서 사진은 없지만 조개류, 해양생물의 껍데기가 가득한 방에 가면 여기가 태평양인지 대서양인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곳도 있습니다.
이슬라 네그라의 상징 물고기 조형물
“역사적 사건, 지리적 환경을 우리 민중들의 삶과 투쟁을 모두 아우르는 총괄적인 시를 반드시 써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슬라 네그라의 거친 해변과 대양의 사나운 물결 덕분에 나는 이 시의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다.”<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p215>
이슬라 네그라에는 집이 두 채밖에 없었답니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도 않은 곳이었다지요. 네루다가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 사회를 조망한 대서사시 <모두의 노래>를 집필하기 위해 그 중 한 채를 얻은 후부터 유명해진 곳입니다. 시인 덕분에 이곳은 마을 자체가 조그만 휴양지로 변했답니다.
집 밖으로 나와 마당 곳곳을 걷고 가만히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네루다가 왜 이 집을 그렇게 좋아했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검은 돌이 많아 검은 섬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곳, 바다는 매일 시인을 찾아와 귀를 간질이고 시상을 안겨주었을 겁니다. 그러면 네루다는 그저 바다가 시키는 대로 펜을 굴리며 많은 이들의 심장을 울릴 시를 써 내려갔을 테지요. 사람을 사랑하고 시를 사랑했던 시인에게는 저 드넓은 태평양의 파도 역시 좋은 벗이 되었을 겁니다.
"내 보잘것없는 시가 민중에게 칼이 되고 손수건이 되고, 빵을 위한 투쟁의 무기가 되기를 열망"했던 시인, 네루다와 함께 한 소중한 시간을 안고 왔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풍채 좋은 그의 모습도 가슴에 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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