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런저런 이야기/세계 여행 이야기

달이야? 화성이야? 칠레 사막 달의 계곡

by 영글음 2011. 6. 1.





칠레를 마감할 무렵 우리는 ‘달의 계곡’에 섰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아타카마 사막 한 가운데,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대지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목을 바짝 마르게 합니다. 그 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걷고 또 걷는 것뿐……. 태양은 어떻게 하면 자신의 빛을 더욱 뽐낼 수 있을까 고심하는 찰나, 인간의 탈을 뒤집어 쓴 생명들은 그 순간 주어진 운명을 고스란히 받아 안으며 사막에 발을 내딛습니다.







달의 계곡, 누군가 정성 들여 잡아 놓은 계곡의 주름을 보면 이곳이 지구인지, 달인지, 화성인지 혹은 제3의 우주공간인지 가늠하기 힘듭니다. 하늘에서 곧 도넛 모양의 우주선이 내려와 지구를 정복할 것 같습니다. 바위틈 속에 얄밉게 버려진 쓰레기가 바로 그 증거입니다. 지구를 더럽히고 황폐화시켜 인간들을 쫓아 내려는 계획이 분명합니다. 만약 그것들이 사람이 한 일이라면, 지구는 자기 손으로 우리를 내 쫓을지도 모르겠군요







막힌 게 없어서 그런지 눈앞에 보이는 거리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금방 닿을 줄 알았던 목적지가 가도 가도 다가오지 않았지요. 어느새 발 밑은 부드러운 모래 바닥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한 발 한 발 디딜 때마다 발이 푹푹 빠지는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고난의 길입니다. 가로, 세로로 켜켜이 쌓인 지층이 세월의 무게를 이기고 여행객을 반깁니다.



오랜 세월을 거친 자연은 단단한 바위를 이리저리 멋진 모습으로 빚어냈습니다
. Las Tres Marias - 3개의 마리아상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바위도 그 중 하나이지요. 바위 전체를 감싸고 있는 희끗한 것은 소금기랍니다.

 







아주 옛날, 이곳이 바다였는데 융기하면서 사막이 된 덕분에 여행객들은 사막 한 가운데서 짠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모래언덕을 올라 꼭대기까지 다다랐습니다. 위에서 보니 일렬로 언덕을 오르는 여행객의 행렬이 마치 고행의 길을 걷는 예수와 12제자 같습니다. 신기하게도 오래 걷다 보니 많은 이들이 일행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홀로 길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인생이란 게 결국은 혼자 가야 하는 길인 까닭이었을까요? 느릿하게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제각기 머릿속에는 자기가 안고 있는 인생의 숙제를 풀기 위해 고심하고 있을 테지요.






모래사막 꼭대기에서 우리를 맞이한 건 하루 일과를 마친 태양의 작별인사랍니다. 저 멀리서 만년설이 쌓인 산들이 굽이굽이 병풍을 쳤고, 구름은 한 일()자의 형상을 하고 머리 위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하늘 밖으로 사라지는 태양의 색은 강렬합니다. 내일 아침이면 또 떠오를 텐데, 마치 남은 정열을 모두 불태우듯 빛을 내뿜는 태양을 보자면 조금은 바보 같고 때로는 가진 에너지를 가늠할 수 없어 대단하게 보입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보는 달의 계곡이 붉게 변했습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고 있습니다.






태양이 몸을 완전히 숨기자 아타카마 사막, 달의 계곡에도 차곡차곡 어둠이 내려앉았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장밋빛이었던 세상은 금세 모습을 바꾸고 황량한 황무지마저 존재를 숨깁니다. 얼른 사막의 모래 하나에 ‘후~’하고 내 숨결을 불어넣었습니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훗날 낯선 땅에서 온 낯선 이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모래조각은 속삭일 겁니다. 한국말로 “안녕” 인사를 한 뒤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니까 나랑 함께 가자”고 말입니다칠레 사막에서 맞는 마지막 밤, 사막의 여행객들은 언덕을 내려가 각자 지프차를 타고 인간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