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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내가 읽은책

내 청춘의 단면을 일깨워준 [청춘의 문장들]

by 영글음 2010. 8. 10.



한창 구르지예프, 장자, 칼릴 지브란 이런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다가 잠시 쉴 겸 해서 집어든 책 [청춘의 문장들]. 그런데 첫 장을 읽자마자 이틀 만에 끝을 보았다. 마감기한을 코 앞에 둔 보도자료를 책상 한 편에 미뤄둔 채, 지어야 할 밥과 볶아야 할 감자를 팽개친 채, 그렇게 나는 김연수를 만났다.

“삶을 설명하는 데는 때로 한 문장이면 충분하니까. (p 9)”

책 서문에 위 글귀만 없었어도 할 일을 마칠 수 있었을 텐데, 소설가 김연수는 문장 하나하나에 자신의 청춘을 담으며 마치 자석을 든 듯 독자를 책 속으로 끌어들인다. 제목을 보고 작가가 좋아했던 명문들이 쏟아지나보다……, 라고 생각했지만 이 책은 유년시절의 회상과 인생에 대한 짧은 상념을 엮은 책이다.

내용 중간마다 생각을 깊게 만드는 한시, 하이쿠가 나온다. 낯선 시들을 소개받고 감상을 공유하는 것도 좋을 일이다. 그보다 더 가슴을 저릿하게 만드는 건 별 것 아닌 것 같은 그러나 그때는 참 별 것이었을 청춘의 단면들이다. 김광석에 김소진, 야외 스케이트장, 정릉동 자취방……. 결코 나와 꼭 같은 시절을 보낸 건 아닌데도 그 위에 아련하게 겹쳐오는 내 청춘의 시절을 덧입히고 추억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김연수가 쓴 글 속에는 분명 ‘우리들의 청춘’이 담겨 있었다. 이 책을 읽은 다른 이의 글에서도 자신의 청춘과 비슷하다, 공감한다는 말들이 쏟아진다. 그렇다면 김연수는 청춘의 보편타탕함을 이야기한 것일까? 나와 7살이 차이나는 작가, 80년대 학번과 90년대 학번이라는 강이 있는데도 그는 글을 통해 시간을 오므렸다 펼쳤다하는 신비한 재주가 있었다. 마치 새로 나온 축지법을 선뵈듯이.

전문 글쟁이들이 있는 건 참 다행한 일이다. 나도 잘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과 기분을 쏙 잡아 문장으로 만들어주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춘의 문장]은 청춘을 되돌아보고 싶은 사람이나 정리가 필요한 사람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빵집 아들로 태어나 자신을 가운데가 빈 도넛 같다 하는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독자의 청춘과 인생도 그곳에 있을 것이다. ■


※  책 속에서 마음을 잡아 끈 문장 몇 개

"사이에 있는 것들, 쉽게 바뀌는 것들, 덧없이 사라지는 것들이 여전히 내 마음을 잡아끈다. 내게도 꿈이라는 게 몇 개있다. 그 중 하나는 마음을 잡아끄는 그 절실함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 (p11)"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p141)"

“여전히 삶이란 정답표가 뜯겨나간 문제집과 비슷하다.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는 있지만 그게 정말 맞는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151)”

"봄빛이 짙어지면 이슬이 무거워지는구나. 그렇구나. 이슬이 무거워 난초 이파리 지그시 고개를 수그리는구나. 누구도 그걸 막을 사람은 없구나. () 울어도 좋고 서러워해도 좋지만,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해서는 안되는 게 삶이로구나. (p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