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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이야기/짧은 생각

가을, 그 센치멘탈함에 대한 독백

by 영글음 2010. 9. 8.
남편이 학교에 가면서 내려 놓은 커피를 찻잔에 담는다.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꺼지는 기계 탓에 미지근하다.
미국 와서 길들여진 원두커피 맛은 참 좋다.
허나 커피는 어느 정도의 뜨거움을 간직해야 제대로 된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법.
식어버린 검은 음료를 다시 커피메이커에 붓는다.
버튼을 누르고 불이 들어왔으니 몇 분 후면 따뜻한 커피를 입속에서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거실 창으로 볕 좋은 햇살을 잠깐 즐기다가 어젯밤 읽다 만 책을 집어 든다.
드라마 작가 노희경이 쓴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너는 사랑하고 있으니 무죄, 너는 사랑 안 하니 유죄, 그리고 힘차게 내리치는 꽝꽝꽝.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순간처럼 이 책이 다시 손에 와 붙어 버렸다.
작년 봄 광화문 교보문고 한 귀퉁이에서 뚝딱 읽었을 때가 처음이었지 아마. 
직장 동료 자리에 있던 책이 우연히 내 짐 속에 들어와 두 번째 만남을 갖고 지금이, 세 번째다. 
 
 
 
지난 가을 노희경 작가가 쓴 드라마 <그들의 사는 세상>을 다운받아 콩 까먹듯 한 회, 한 회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회가 끝났을 때 나는 내 글을 고민하고 인생을 생각하고 앞날을 유추하며 진한 열병을 앓았다.
주인공 ‘정지오’와 ‘주준영’을 보내지 못하고 가을 내내 허덕였던 것 같다.
내게 아직 열정이 남아 있을까, 무언가 새로 시작할 힘이 있을까,
그들이 사는 세상이 내 세상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의 늪에 빠져 있다가 끝 무렵에 이 책을 읽었다.
작가의 삶과 사랑, 드라마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책을 읽으며,
또 한 문장 한 문장 글을 되새기며 내 상처에 작가가 발라주는 약을 가만히 얹었다.
그런데 다 아물지 않았나 보다.
가을은 다시 오고 이 책을 또 읽었으니 말이다.  
 

 


 
감상은 지나친 감정 상태를 말한다는데,
늘 감상적인 나는 올 가을도 여지 없이 찬란한 빛깔의 향연과 도드라진 처연함에
눈물을 왈칵 쏟으며 감상의 도가니 속에 아주 푹 파묻혀 버릴 것이다.
언제나처럼, 가을을 살아내고 나면 맑은 눈으로 겨울을 맞이하겠지.
그러고 나면 개미 눈물, 쥐 눈곱 아니 우리 똥강아지 표현대로 코딱지만큼은 성장해 있으리라 믿는다.
이제 나도 성인,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성장 중인 나는 가을마다 성장통을 퍽 요란하게 앓는다.
 
 
 
온 몸을 뎁힌 커피가 다시 나를 부른다.
가을 타는 사람에게는 향이 풍부한 커피가 제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