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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이야기/미국 살았던 이야기

궁하면 통한다! 미국에서 막걸리 담가 먹기

by 영글음 2010. 9. 2.

※ 두어달 전에 올렸던 글인데 이쪽으로 옮겨 왔습니다. 제 막걸리 사랑 이야기라고나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저도 학창시절엔 꽤나 술을 많이 마셨답니다. 물론 술이 세지는 못해서 조금만 마셔도
기분이 좋아지는 경제적인 애주가였지요. 두꺼비 그려져 있는 진로부터 시작해 참나무통 맑은이슬, 청색시대, 김삿갓, 청산리벽계수, 곰바우를 거쳐 산, 처음처럼, 참이슬 등 온갖 종류의 소주도 마셨고요, 역시 이름도 다 외우기 힘든 맥주도 제가 소화시켰답니다. 그중에서도 막걸리는 가장 아끼는 술이에요.

전통술집 가면 파전, 찌개, 밥(? 주로 돈이 없어 끼니와 술을 한꺼번에 해결했지요)과 작은 항아리에 나오는 막걸리, 동동주를 무척 사랑했어요. 그리고 대학시절부터 졸업 후까지도 오랫동안 노래동아리 활동을 했는데요, 1차는 무조건 중국집 가서 짬뽕국물에 소주, 2차는 파전에 푸른 병의 서울 장수막걸리를 마시는 것이 정해진 뒷풀이 코스였답니다. 간혹 기회가 생겨서 마셨던 강화도 인삼막걸리나 농활 때 먹어봤던 화천 옥수수 막걸리, 은평구 녹번동 은혜마트에 가면 파는 더덕막걸리의 맛도 결코 잊을 수 없어요.

미국에 와서 가장 슬픈 것 중 하나가 바로 맛 좋은 막걸리를 먹을 수 없다는 점이었어요. 가끔 큰 도시에 가면 막걸리를 사오긴 하는데 살균처리된 것이라 맛이 살아 있지 않거든요. 한국 가면 막걸리부터 마시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뉴욕에 사는 지인이 막걸리를 직접 담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답니다. 그런데 우리 동네는 시골이라 딱 하나밖에 없는 한국 마트에 누룩이 없지 뭐에요!  그리하야 지난 번 뉴욕  갔을 때 누룩 두 봉지를 사온 뒤에야 행동에 들어갈 수 있었답니다. 자, 집에서 담그는 간단 막걸리 제조법을 공개합니다. ^^

 준비물: 찹쌀: 1kg / 누룩 200g / 이스트 5g / 생수 2ℓ
 



막걸리 담그는 방법은 몇 백 가지라 합니다. 집집마다 김치 맛이 다른 것처럼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맛이 천차만별이겠지요. 제가 선택한 것은 그저 가장 쉬운 것이었다는 것을 먼저 밝혀둡니다. 먼저 찹쌀을 씻어야 합니다. 씻는 물이 투명할 때까지 씻어내야 한다는데 이놈의 쌀이 열 번 이상을 씻어도 물은 뽀얗습니다. 대략 15번 정도 씻고 압력솥에 고두밥을 지었습니다. 찾아보니 몇 시간 물에 담가 불렸다가 말려야 한다는데 성질이 급해 다 생략했답니다.  





밥이 다 되었으면 이제 누룩을 섞어야 합니다. 누룩을 넣기 전에 손톱만한 크기로 부셔줬어요. 술을 만드는 그릇도 문제인데요. 항아리 같은 게 있다면 아주 좋을 텐데 미국서 구할 방법이 없어요. 어쩔 수 없이 냄비에다가 만들었답니다. 밥 섞기 전에 가스레인지 불에 올려놓고 조금 달구어 줬어요. 식기 살균 과정이라고나 할까요? 밥과 누룩을 잘 섞었다면 빵 만들 때 쓰는 이스트를 5g 정도 넣고 생수 2ℓ를 부어야 해요.

 

이제 약 이틀 정도 가만 놔두어야 합니다. 온도가 중요하다는데 25도 전후로 맞추면 됩니다. 만약 30도가 넘어가면 이것이 막걸리가 아닌 식초로 돌변하니 온도 관리는 잘 해야 한답니다. 얼핏 봐서는 저 냄비 안에 막걸리가 담겨 있을 것 같지 않지요?


막걸리 제조 3일째

이틀 후가 지나고 뚜껑을 열었더니 누룩과 이스트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답니다. 밥알과 누룩이 위로 떠 있어요. 얼마 전 방영했던 <신데렐라 언니>에서 은조가 했던 것처럼 가만 귀를 대고 듣노라면 뽀글, 뽀글 술이 익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어요. 물론 눈에도 보이지요. 냄새도 꽤 그럴싸하답니다. ^^ 


막걸리 제조 3일째 

이때부터 약 3일간 아침, 저녁으로 휘휘 저어주어야 해요. 아무 거나 사용하면 다른 균이 들어갈 까봐 포장되어 있는 빨대를 뜯어서 섞었는데 잘 안 섞이더라고요. 다음날부터는 나무주걱으로 저었네요.  딸내미가 자기가 하겠다고 해서 애먹었답니다.


막걸리 제조 5일째 


막걸리 제조 5일째  

닷새쯤 되면 밥 알갱이가 아래로 가라앉습니다. 이때부터 아침, 저녁으로 휘젓기를 멈추고 하루나 이틀 정도 가만 놔두세요.


막걸리 제조 6일째 

 건더기가 거의 안 보이지요? 찹쌀을 씻을 적부터 이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나면 효모가 살아 있는 막걸리가 완성된답니다.

이제 술찌꺼기를 거를 차례에요. 처음에는 사진처럼 조그만 깔대기와 거름망을 이용해서 걸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좀더 큰 체에 넓은 그릇을 가져와 한꺼번에 붓고 국자로 있는 힘껏 눌러 마지막 한 방울까지 꾹꾹 짜내었답니다.



이건 술을 다 거르고 남은 찌꺼기 일명 술지게미라고 하지요. 압력솥 가득했던 밥은 다 어디로 가고 술지게미는 얼마 안남았습니다. 페트병에 담아 보니 대략 3
ℓ 정도 나오네요. 이것이 생각보다 도수가 높아요. 그래서 마실 때는 사이다나 토닉워터를 조금 섞어서 마셨어요. 그렇게 하면 둘이서 쉬엄쉬엄 두 번 정도 먹으면 딱 알맞을 양이랍니다. 맛은 어땠냐고요? 살균탁주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맛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모든 음식은 정성이 필요한 법이지요. 제가 담그긴 했지만 정성을 쏟았다고는 말 못합니다. 설렁설렁 되나 안되나 한번 보자라는 심보로 시작했기 때문에 사실 한국에서 먹어봤던 유명한 막걸리들의 깊은 맛은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남편과 딸내미와 함께 직접 술을 빚어본다는 재미, 미국에서 이 정도라도 맛볼 수 있다는 기쁨 덕에 만족합니다.



술을 거른 날 저녁 뒷마당에서 열심히 자라고 있는 파와 깻잎 등을 따서 파전, 깻잎무침 등을 만들었어요. 포기김치도 새로 썰고 해서 남편과 냠냠 막걸리를 마셨답니다. 신기한 건 도수가 높은 덕에 금방 취했는데도 돌아서니 금세 깨더란 것이지요. 밖에서 막걸리 많이 마시면 머리 아프잖아요? 집에서 만든 막걸리는 머리가 아프지 않아서 더욱 좋았답니다. 물론, 너무 많이 마시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요. 이곳은 벌써 날이 선선해졌습니다. 찹쌀 씻어서 막걸리 한번 더 만들어 보려구요. 가을을 무지 타는 저에게 친구가 필요하거든요. 좀 걸쭉한 친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