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런저런 이야기/미국 살았던 이야기

미국 시골생활 1년, 느낀 점 5가지

by 영글음 2010. 8. 24.

오늘 대학교가 개강을 했습니다. 미국은 8월 말이나 9월이 1학기에요. 즉, 새 학년이 시작되지요. 남편도 오늘부터 박사 2년차네요. 학교에 모셔다 드리러(?!) 갔더니 신입생들과 기타 학생들로 꽉 차서 운전하기가 꽤 힘들었답니다. 그래도 캠퍼스가 북적북적하니 생기가 돌고 저까지 덩달아 새 기분이 되었습니다.

지구가 한 바퀴 돌았습니다. 작년 이 맘 때쯤 워싱턴 D.C.에서 서른 명이나 탈 수 있을까 싶은 경비행기를 타고 이곳 스테이트 칼리지(State College)에 도착, 우리 세 식구는 커다란 눈을 끔뻑이며 미국 땅을 밟았지요. 며칠 동안 살림살이며, 먹을거리를 장만하느라 하루도 빠짐없이 월마트를 다니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1년이 지나는 사이, 10년 동안 어둠속에 갇혀 있던 제 운전면허증이 새 인생을 살기도 했고, 되지도 않는 영어로 가스, 전기도 신청해보고 나이아가라폭포 같은 곳으로 여행도 다니며 잘 살았습니다. 무엇보다 마음먹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인 것 같네요. 고백컨대 책을 읽어야 한다는 당위성은 노상 가지고 있었으되 치열하게 실천에 옮긴 적은 미국에 온 다음부터 랍니다.


-> 집에서 2분 거리에 있는 목장이랍니다

그동안 미국 시골마을에 살면서 느낀 점을 다섯 가지만 추려 정리해 볼까 합니다. 한국에서 겉으로 느껴온 미국과 직접 살며 느낀 미국은 분명 차이가 있었습니다. ‘양키 고우 홈’을 외치며 길거리에서 보낸 나날도 있었지만 미국에서 살아보니 불편한 점도 있고 좋은 점도 있습니다. 다만 이 글은 미국 대도시가 아닌 산간지방 작은 시골마을에 살면서 겪고 느낀 점이라는 것을 먼저 밝힙니다. 미국이 워낙 넓은 곳이라 제가 느낀 것을 다른 곳에 사시는 분들은 부정할 수도 있다, 이 말씀입니다.


1.
미국, 늘었다 줄었다 고무줄 사회
---------------------------------------------------------------------

한마디로 미국은 참 ‘유도리’가 많은 나라입니다. 예를 들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의 반납기일을 넘겼다고 해볼까요? 원칙은 하루 늦을 때마다 몇 불씩 벌금을 내야 한답니다. 그런데 담당자에게 가서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메일로 내역을 받지 못했다 이러면서 사정을 하면 벌금을 얼마간 깎아줍니다. 저 역시 같은 경험이 있었지요. 14불 벌금을 반으로 깎아 7불만 낸 적이 있었습니다.

도서관만이 아닙니다. 은행계좌와 연결된 직불카드가 있는데요, 우리나라와 다르게 통장에 잔고가 없는데 직불카드를 사용하면 한 번 긁을 때마다 25불씩 벌금이 나간답니다. 그것도 모르고 저는 왜 안 되지? 이러면서 마트에서 4번을 시도한 적이 있었어요. 벌금은 100불! 돈을 쓴 것도 아니고 시도만 했다는 이유로 100불을 내려니 가슴이 여간 저미는 것이 아니었답니다. 그런데 남편이 은행에 가서 그런 제도를 몰랐다, 이번이 처음이다 애원하니 역시 50%를 깎아주더랍니다. 50불도 아까웠지만 50불을 아꼈다는 데에 만족했지요.



벌금만이 아니에요. 좋은 어린이집은 1, 2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데 마냥 손 놓고 기다리면 세월아 네월아 언제 다니게 될지 모른답니다. 자주 원장을 찾아가서 이 어린이집에 꼭 보내고 싶다, 여기 아니면 죽음을 달라 하며 얼굴도장을 여러 번 찍으면 뒤에 기다리고 있는 대기자들을 밀쳐낼 수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핸디캡이 있으면 더욱 좋지요. 둘째를 가졌다거나 부인이 도망갔다거나……. 이런 조건여하에 따라 변수가 많기 때문에 대기자 순서는 무의미합니다. 그 탓에 우리 집 똥강아지는 기다리고 있던 어린이집에 올 가을도 못 들어간답니다. 다른 한국 엄마들은 잘만 찾아가는데 저는 어렵더라고요.



2. 어른도 안녕, 아이도 안녕?
---------------------------------------------------------------------

아시다시피 영어에는 한국말처럼 세분화된 높임말이 없습니다. 어른에게 고개를 숙여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법도 없지요. 그런데 오가다가 모르는 사람끼리도 인사는 왜 그렇게 잘하는지요? 처음엔 영 어색했는데 1년을 살다 보니 이제는 제가 먼저 인사합니다.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에게도 손 한번 번쩍 들고 "Hi"나 “Good morning"을 외치다 보면 제가 꼭 후레자식이 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저보다 새파랗게 어린 아이들 역시 저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옆집 꼬마는 묻습니다. “나, 오늘 네 딸하고 놀아도 돼?” 네 살, 다섯 살 아이들이 저에게 “You"라고 하는 것도 참 기분이 묘합니다. 똥강아지는 영 헷갈리는가 봐요. 어린이집 선생님이나 다른 미국 어른에게는 손들어 인사를 하는데 꼭 한국 어른에게는 고개 숙여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해야 하니 그럴 법도 하지요.



3.
교과서, 시험범위가 없는 미국 초등학교
---------------------------------------------------------------------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우리 동네 초등학교는 교과서가 없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수업을 할까요? 선생님이 그날, 그날에 맞춰 배울 내용을 프린트하여 가지고 온다고 합니다. 때때로 프로젝트 수업도 하는데 한 학기 동안 한 가지의 주제로 공부합니다. 예를 들어 이번 학기의 주제가 ‘일본’이라면 한 학기 내내 일본의 역사나 문화를 스스로 조사해가야 하고 일본 음식이나 기모노 등에 대해 배우고 일본 종이접기를 해보는 겁니다.

시험을 위해 공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렵습니다. 학교에 따라서는 시험 보는 날짜를 단 며칠 전에 알려주기도 하고 범위가 따로 없기 때문에 말 그대로 제대로 된 학업성취도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 아이들은 학교 가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아이를 낳지 않았을 때 저는 아이 교육을 위해 미국을 비롯하여 다른 나라로 가는 부모들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닌다면 하루 종일 학원에 시달리고 일제고사니, 국제중학교니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할 텐데 상상만 해도 두렵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강인한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내 딸만큼은 자연과 더불어 키우리라…라고도 못할 것 같거든요. 미국도 교육열은 높다지요? 아마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면 또 다른 모습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시골동네 초등학교는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곳’이랍니다.


4.
할머니 은행직원, 할아버지 마트 알바
---------------------------------------------------------------------

우리나라는 대기업의 경우 40대만 되어도 명예퇴직을 고려해야하잖아요? 그런데 미국에 오니 머리가 하얗게 되고도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은행이나 보험사 같은 사무직 직원뿐 아니라 마트나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일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지난 봄 영어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해주신 이야기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을 했다나 봐요. 마트 할아버지도 그런 경우지요. 대개 이분들은 계산된 물건을 비닐봉투에 담아주는 일을 합니다.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고객 입장에서는 편리한 그런 일이지요. 그런데 부작용도 있는 듯합니다. 노인 취업을 위해 젊은이들을 내쫒은 꼴이 되었다고 할까요? 영어 선생님은 10년 전부터 서서히 패스트푸드 가게 직원들의 나이가 높아져간다는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이래저래 세계 경제 불황 시대에 모두가 살기 힘들어진 것 같습니다.


-> 일터뿐 아니라 도서관에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무척 많답니다


5. 가난해도 장난감 선물 받는 아이들
---------------------------------------------------------------------

제가 미국 와서 받고 있는 혜택 중에 WIC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답니다. 저소득층 여성과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에요. 이걸 신청하면 우유나 주스, 빵, 계란, 채소, 땅콩버터, 시리얼 등을 공짜로 살 수 있습니다. 아이가 어리면 분유나 이유식도 추가되지요. 미국인뿐 아니라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자격이 주어집니다. 한국에서 어떻게 살았든, 석사나 박사과정에 있는 유생들은 소득이 적기 때문에 많이들 신청한답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저소득층에게 장난감을 한 보따리 나눠주는 곳도 있습니다. 이건 기부문화에 따른 혜택인데요, 동양인들은 대부분 유학생인지라 선물을 조금만 안겨주지만 진정한 저소득층 아이에게는 손으로 안을 수도 없을 만큼 선물과 각종 식료품을 선사합니다. 부모가 장난감 선물을 해줄 형편이 안 되도 이곳, 저곳이 산타 역할을 대신 해주는 셈입니다. 또한 의료보험이 없는 저소득층에게 무료로 의료 해택을 주는 병원도 있답니다. 치과 치료도 포함되어 있어 보험이 없는 한국 유학생들도 가끔 활용하고 있습니다.


-> 작년 크리스마스 때 받았던 똥강아지 선물이에요

미국의 사회보장제도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과 실효성을 띠는지 알아본 바는 없습니다. 다만 제가 살면서 받은 혜택과, 직업이 없는데도 아이 넷을 키우며 나라 보조금으로 살고 있는 앞집 가정을 보고 있자면 가난한 사람이 살기에는 한국보다 미국이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듭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선진국이구나 싶기도 하고요. 더 깊게 파고들면 문제도 많을지 모릅니다. 그건 살면서 차차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