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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저런 이야기/미국 살았던 이야기

미국 시골 사는 아줌마 뉴욕 하루 방문기

by 영글음 2010. 9. 16.
지난 주 일요일에는 뉴욕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답니다. 볼 일이 있어서 갔던 것인데 일정 상 딱 하루 머물고 월요일에 다시 집에 왔어요. 짧은 여행, 오고 가는 시간만 10시간이라 뭐 여행이라 이름붙일 것도 없지만 나즈막한 풍경만 보다가 높은 빌딩 속에서 숨을 쉬니 새로운 기분이 들더라고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뉴욕행 버스 안에서의 사색이 궁금하시다면 아래를 눌러 보세요. ^^

-> 2010/09/14 비오는 날 버스 안에서 날아다닌 난상들

몇 달 전 뉴욕에 갈 적에는 중국버스를 타고 가서 그랬는지 뉴욕 남쪽 부근 차이나 타운에 내려줬거든요. 근데 이번에 탄 FULLINGTON 버스는 맨해튼 42번가 타임스퀘어 앞에 세워주는 바람에 내리자마자 복잡한 세상과 만났답니다. 일요일이라 시내에 사람이 많았어요. 인도를 따라 걷는데 하도 붐빈 탓에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며 "Sorry~"를 외치는 모습이 얼마나 생소했는지 몰라요.  비가 보슬보슬 내려 미세한 수분이 안경알에 부딪혀서 좀 신경이 쓰이기도 했어요. 우산을 써도 불편, 안 써도 불편.


뉴욕을 더욱 뉴욕답게 만드는 노란 택시! 우리도 옛날엔 택시가 저런 색이었는데 말이죠.


비가 오는 바람에 길거리 좌판들도 비닐을 뒤집어 썼군요! 맨해튼 거리에는 사람 얼굴이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예술가들이 많답니다. 근데 옆에서 보면... 하나도 안 닮았어요.


뉴욕은 이번이 여섯 번째네요. 5년 전 세계여행할 적에 뉴욕을 들른 것 빼고는 모두 일 때문에 혹은 한국에서 오는 누군가를 픽업하러 왔었어요.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세계 경제의 중심지 뉴욕은 길거리만 걸어도 무지 재미있긴 한데 교통 질서는 참 더럽게 안지키는...... 차 가지고 오면 절대 안될 곳이랍니다. 맨해튼에 들어가면 GPS도 신호를 잘 못 잡아요. 이 길로 가랬다 저 걸로 가랬다 다시 바뀌고 꺼지고 복장 터지지요.


쉐비스.. 첨엔 극장 이름인줄 알았는데 멕시코 레스토랑이랍니다. 간판 무지 커요! 


뉴욕 맨해튼 최대의 메가플렉스 AMC 25 입구랍니다. 전에 심형래 감독이 디워 개봉할 때
여기 와서 싸인회도 했다고 해요. 아쉽게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문 구경만 했네요.


왼쪽 편 바둑판 모양의 광고판. 첨엔 영화광고인줄 알았는데 드라마 광고였어요.
올 가을부터 목요일 8시 반에 방영할 <MY DAD SAYS>. 



눈알이 돌아가도록 화려하게 터지는 네온사인, 고개를 뒤로 꺾어야 겨우 꼭대기를 볼 수 있는 높다란 빌딩들, 전면 벽에 설치된 거대한 광고판 앞에 서니 그곳이 내가 사는 현실인지, 폴과 버섯돌이가 사는 4차원 세계인지 알쏭달쏭해졌습니다. 뉴요커의 전형, 짧은 자켓에 긴 목, 살짝 스커프를 두르고 목 길이만큼 다리도 긴 금발 머리 여자가 한 손에 커피를 들고 걸어갑니다. 꿈은 아닌 듯해요.



여유가 있었더라면 타임스퀘어 근처나 5번가, 브로드웨이를 따라 걷고도 싶었지만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어서 지하철을 타러 내려갔습니다. 마그네틱 카드를 긁고 들어가려는데 카드가 없는 한 사람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섰다가 다가오는 사람을 잡고 물어 봅니다. 질문을 받은 사람은 곧바로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묻습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빠른 속도의 스페인어로 대화를 합니다. "#$%^&*#$%^&*" 역시 전 세계 인종이 모인 곳 뉴욕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좋아졌다고는 하는데 한국 지하철과 비교하면 뉴욕 지하철은 좀 음침하답니다. 천장도 낮고 조명도 어둡고 특별히 쓰레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깨끗하지 못하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5년 전 여행할 때보다는 이용하는 사람 수가 많이 늘은 것 같긴 해요. 그 때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좀 무서웠던 기억이 나네요. 



7번 지하철을 타는 곳까지 걸어가는데 동양 아주머니 두분이 양쪽 가장자리에 팻말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영어로 써 있었는데 급히 읽느라 'JESUS'라는 단어와 '666'이라는 숫자만 읽었습니다. 그리고 들려오는 한국어 찬양 노래소리...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인도어가 날아다니는 뉴욕에서 어느 소리보다 확실히 들렸답니다. 저는 특별한 종교가 없지만 그분들이 한국인이 아니기를 바랐었나봐요. 조금 당혹스러운 걸 보면 그랬나봐요.





바깥 바람은 선선한데 지하철 안은 따뜻하다 못해 후텁지근합니다. 간간히 열기를 품은 바람이 불어왔는데  인공적으로 기계를 돌리는데서 나오는 바람이다 보니 기분이 찜찜했어요. 여러 모로 도시의 가을은 시골보다 늦게 오나 봐요. 이런저런 생각을 안고 
7번 지하철의 끝 플러싱으로 향했답니다. 이곳은 중국인과 한국인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에요. 지하철 출구를 나서고 보면 중국 한 복판에도 이런 곳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이곳은 영어 간판보다 중국어,  한국어 간판이 훨씬 많아요.



무척 시끄럽지만 생기 넘치는 곳이기도 해요. 약속한 지인들을 기다리면서 잠깐 백화점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그곳은 백화점이 아닌 돗대기 시장 같더라고요. 사람이 무척 많은데 대부분 중국인들이라 시끌시끌했거든요. 하지만 아울렛을 드나들듯 쇼핑백에 한가득 물건을 사가는 그들을 보면서 아, 오늘의 세계경제는 중국인이 이끌어가는구나를 절감했습니다. 결코 무시하면 안 될 사람들이어요. 


플러싱에 있는 한국 상가? 후훗 여기도 뉴욕이랍니다.

6시가 다 될 무렵, 사람들을 만나 갈비구이를 먹고 차를 마시며 장시간 회의를 했답니다. 늦게 도착하니 시간도 후딱 지나가고 서운했지만 몇 개월 후에 다시 올 것을 약속하며 아쉬움을 달랬네요. ^^  


뉴욕에서 하루 묵었던 곳에서 바라본 풍경이랍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바다!

다음날, 12시 중국 버스를 타기 위해 맨하탄에 있는 차이나타운에 갔어요. 점심 먹을 시간이 없어서 서브웨이에서  제 팔뚝만한 샌드위치를 사고 탄산음료도 사고 커피도 사고 완전무장을 하고 버스가 서 있는 곳으로 갔지요. 그런데! 제가 타고가야할 버스가 이미 출발했하여 도로 한복판에 있지지 뭐에요! 좀 빠듯하게 가긴 했지만 그래도 2분 가량 남았었는데 이게 웬 봉변! 저는 양손에 커피와 사이다를 들고 어정쩡하게 그러나 신속히 차도로 뛰어가 버스 문을 힘차게 두드렸답니다.

"Wait, Wait  for me!"

오늘 내가 돌아가지 않으면 우리 똥강아지와 남편 저녁은 누가 챙겨주나... 내일 남편 수업 새벽인데 똥강아지 어린이집은 어쩌지? 그 짧은 몇 초동안 별 생각을 다 하고 있는데 운전사는 매정하게 손을 내젓습니다. 제가 차를 계속 두드리자 문을 열어주었더니 역시 손을 흔들어요. 저는 얼른 올라타면서 나는 이미 표 끊은 사람이고 꼭 타야한다... 라고 항변을 했지요. 그런데 좌석에 아무도 없더라구요. -_-;;; 이제 막 뉴욕 도착해서 사람들 내려주고 돌아가는 차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답니다! ^^;; 

부끄러운 마음에 얼른 내린뒤 탑승 장소로 갔더니 기다리는 학생이 한 서른 명은 되었답니다. 출발 시간은 훌쩍 넘었고 한 20분은 기다렸나봐요. 갑자기 관광 버스(?!) 대신 소형 마을버스? 같은 조그마한 차가 오더니 타라고 합디다. 무얼 타든 우리 동네까지만 데려가면 되지 싶었는데 막상 타고 보니 화장실이 없는 거에요. 미국 버스는 대개 뒷 칸에 화장실이 있거든요. 그런데 이 버스는 화장실은 커녕 자리도 좁아 덩치 큰 남학생들이 다리를 접다시피하고 앉아야 했어요.   

휴우, 카페인을 섭취하면 화장실에 금세 가고 싶어지는 저는 실망했어요. 우스운 모냥새로 들고 달린 커피며 청량음료를 언제 먹어야 할지 고민이었답니다. 기분 같아서는 커피를 한 입 머금고 창밖을 보면 무지 좋을 것 같은데 성급하게 마셨다가는 몇 시간 동안 다리를 꼬고 비틀어야 할지 모르니까요. 그래도 적절한 시간을 두어 잘 마셨고, 중간에 쉬는 덕택에 오징어가 되지는 않았어요.

뉴욕을 출발한지 4시간 만에 창밖으로 우리 동네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산도 많고 들도 많고 높은 빌딩이라고는 학교 근처 학생들 사는 아파트가 전부고 다운타운 건물 대부분 2, 3층인 동네에 오니 마음이 포근해집니다.



오른쪽엔 대학 캠퍼스, 왼쪽엔 레스토랑을 비롯한 상가들! 아담한 다운타운이랍니다.


다운타운 끝 무렵 길이에요.

버스에서 내리고 나면 저는 바로 우리 똥강아지를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달려가겠지요? 똥강아지 역시 엄마를 보면 한 걸음에 달려와 품에 안길 겁니다. 결국 만 하루하고 6시간 쯤 되는 제 일탈은 가족과 상봉하며 끝을 맺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