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런저런 이야기/미국 살았던 이야기

월동 준비하는 다람쥐, 우리집에 놀러왔어요

by 영글음 2010. 9. 18.
요즘 학교 캠퍼스에 가면 나무마다 열매가 잔뜩 매달려 있답니다. 사과 같이 먹을 수 있는 것도 있고 어떤 건 색깔은 무척 예쁘지만 못 먹는 것도 있어요. 도토리는 또 얼마나 많은지 풀숲에 후두둑 떨어져 있는 것을 구경해 볼라치면 밤송이 만큼 큰 놈도 있고, 모자를 쓴 놈 안 쓴놈, 두 개가 붙어 있는 쌍둥이 등 종류도 아주 다양하답니다. 

우리 똥강아지, 제가 뉴욕에 간 사이에 아빠랑 학교에서 도토리를 한 가득 주워 왔더라구요. 작년에도 도토리를 주워서 한참 가지고 놀았는데 제가 버릴 요량으로 뒤뜰에 휙 던졌더니 다음날 모두 없어져던 적이 있어요. 아마도 겨울 채비를 할 동물들이 물고 갔었나봐요. 그게 생각났던지 똥강아지는 다람쥐 먹이 준다고 벼르고 있었답니다.  

그러던 지난 금요일, 환기를 시킬 겸 거실 문을 활짝 열었는데 마침 똥강아지가 도토리를 거실 문 앞에다 열을 맞춰 깔아두는 거에요. 그러고는 가족 모두가 잊어버리고 각자 할 일을 하느라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다람쥐 한 마리가 우리집 거실 문밖을 왔다 갔다 하지 뭐에요?



워낙 우리 동네에는 다람쥐, 토끼, 너구리, 두더쥐, 스컹크 같은 야생 동물들이 많은 곳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는데 이런 이런! 간 큰 다람쥐, 우리 집으로 쏙 들어와 버렸답니다!



다람쥐는 우리가 지를 위해 일부러 주워온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양손으로 도토리를 잡고 이로 깨물어 딱딱한 껍질을 열심히 벗겨 냅니다. 많이 보긴 했어도 이렇게 가까이에 그것도 집까지 들어올 줄은 몰랐기에 저, 똥강아지, 남편 셋은 숨도 못 쉬고 다람쥐가 하는 냥을 신나게 구경했어요. 물론 저는 그 와중에 카메라를 들고 왔지요.



잘 살펴 보니까 다람쥐가 도토리를 먹지는 않더라고요. 대신 한 번에 세 개씩 양볼과 입 속에 넣어 얼굴을 불룩하게 만들고는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아마 자기네 집에 가져다 놓는 것이겠지요? 얘네 집이 우리집 근처인가봐요. 사라진 지 약 1분 후가 되면 다시 우리 거실로 들어와 다음 도토리를 입에 넣었거든요?.겨우내 먹을 양식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을 겁니다.



다람쥐는 사람이 있든 말든, 카메라가 터지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수십 차레 우리집을 제 집처럼 들락날락 거립니다. 똥강아지가 뿌려 놓은 도토리가 한 30알은 되었던 것 같은데 2알 남기고 다 가져가 버린 거 있죠!



그렇게 왔다 갔다 하니까 이 녀석이 여기가 제 집인줄 착각했나봐요. 거실 입구까지가 아니라 아예 집안으로 발을 깊게 들여놔 똥강아지가 어질러 놓은 거실 바닥을 헤집고 다닙니다. 마침 길다란 모양의 풍선이 있었는데 먹을 것인가 아닌가 하고 맛을 보는 것 같았어요. 금방 에퉤! 했어요.



다람쥐는 한창 놀다가 다시 도토리가 있는 곳으로 갑니다. 추운 겨울이 되려면 시간이 좀 있지만 작업을 게을리 하면 비상식량을 충분히 모을 수 없을 지도 모르잖아요? 게다가 우리집 근처에는 도토리 나무가 없으니 오늘 모은 도토리가 녀셕에게는 별식이 될 테지요. ^^



손바닥만한 다람쥐가 저 조그만 손으로 먹고 살겠다고 도토리를 쥐고 있는 모습이 귀엽지 않으세요? 사진을 들여다 보니 턱 속에 도토리 하나가 벌써 들어가 있는 것 같네요.  으흠~ 다람쥐는 발가락이 5개군요! 손가락은 잘 안보여서 패스!



다람쥐들에게 올 가을 맛있는 거 선물한 거 같아 우리 식구는 기분이 째지게 좋았답니다. 아마 내년 봄 쯤에는 자기를 쏘옥 빼닮은 아가 다람쥐를 데리고 다시 찾아오겠지요? 이곳은 한국보다 위도가 높은데다가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인 곳이라 겨울이 빨리 오는 곳이에요. 눈도 많이 내리고요. 이번 주말에 또 캠퍼스에 간다면 도토리 별식 좀 더 준비해 오렵니다. 눈오기 전에 먹을 거리를 챙겨야하는 다람쥐들의 수고를 조금 덜어줄까 싶어요. 히힛, 물론 다람쥐 한번 더 보고싶은 마음도 있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