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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내가 읽은책

[88만원 세대]를 읽고 대한민국 20대에게 고하는 글

by 영글음 2011. 1. 25.


미안하다
. 사과한다. 이제 거두어 담겠다. 불특정20대에게 흘렸던 비난의 막말을. 너희들이 결코 ‘요즘 것들이라 근성이 없고 생각이 모자라’ 아름다워야 할 대학시절을 취업전쟁터로 만들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이제 나는 확실히 알겠다. 86년부터 시작해 20년을 달렸던 내 노래동아리가 2008년 겨울 더 이상 활동하지 않겠다는 후배들 선언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쓰린 가슴 쓸어 내리며 슬픔을 삼켜야 했던 것이 너희 잘못은 아니었다. 너희도 실은 피해자였던 것이다

 

어렴풋이 생각하고는 있었다. 경제위기가 비단 대한민국만의 현실이 아니고 경쟁이 미덕인 세상에서 어떻게 너희들 탓만 할 수 있으랴. 허나 사회적으로 어떤 구조적 문제가 너희를(혹은 우리를) 오늘의 궁지로 몰아 넣었는지에 대해서는 [88만원 세대, 우석훈, 박권일 공저, 2007, 레디앙]라는 책이 알려준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이제 일반명사가 되었을 만큼 유명해진 단어, 88만원 세대는 청년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너희가 평균적으로 받을 법한 월급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일본은 비정규직이 되어도 재계약률 80% 이상에, 노르웨이는 시간당 최저임금이 15,000원도 넘는다고 한다(2003년 기준). 스웨덴은 20세가 되면 생애 첫 자금 지원을 통해 약 2,000만원 정도의 자금을 지원하여 세계여행을 하고 사회로 나갈 발판을 마련한다는 꿈 같은 이야기도 있다. 그에 비해 우리는? 한 학기 대학 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부모 허리가 휘다 못해 끊어져도 이어 붙일 재간이 없다. 토익, 토플, 자격증과 싸워도 졸업해봤자 안정적인 대기업에 들어가는 건 일부의 이야기이다.

 

저자인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는 우리 사회가 “40대와 50대 남자가 주축이 된 한국 경제의 주도 세력이 10대를 인질로 잡고 20대를 착취하는 형국이라고 했다. 사회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범죄현장을 묘사하는 것인지 알쏭달쏭한 묘사, 이것이 우리가 선 현실이다. 한국 경제 성장의 달디단 열매를 맛본 세대가 권력을 아래 세대에게 넘겨 주지 않아 생기는 폐단이다. 소통의 부재, 인간에 대한 예의의 상실, 어쩌면 그것이 권력의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한번 잡으면 절대 놓기 싫은 건 동네 통장, 학급 반장을 해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느냐?

 

그렇지 않아도 우울할 너희들에게 굳이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또 하나의 굴레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문제를 풀려면 문제가 무언지 아는 것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는 이만한 이름도 없는 것 같다. 지역간, 성별간, 계급간 등 그간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던 갈등의 기준 대신 세대라는 관점을 통해 한국 사회를 보았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지금 너희가 처한 상황을 개인의 노력 여부로 치부하거나 그 심각성을 덜 느꼈을 것 같다.

 

문제가 깊어서 일까? 저자가 말하는 세대간 연대를 위해 꼰대가 되지 말라고 했던 조언은 그다지 실효성이 커 보이진 않는다. 영어 수험서를 내려 놓고 20대만의 짱돌, 바리케이드를 치기엔 너희가 가야 할 길이 구불구불 지렁이 같으니 말이다. 바리케이드를 사려면 어느 사이트에서 얼마를 주고 주문해야 하는 것일까? 결국 제도나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할 텐데 그것 또한 지금의 기득권이 바꾸어야 할 문제니 참으로 진퇴양란, 사면초가다.

 

그러나 30대인 나를 포함한 우리들아. 한숨 쉬고 포기하진 말자. 결국 우리 사회는 우리를 필요로 할 것이고 ‘88만원 세대라는 이름 속에 담긴 담론을 풀지 않고는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이 좁아 보인다. 패배의식, 소외감을 느끼지도 말자. 뼛속이 아플 만큼 차가운 현실 앞에 당당히 서보자. 작더라도 조금씩 우리의 목소리를 내보자. 빨간 알약 먹을래, 파란 알약 먹을래 하고 묻는 [매트릭스]의 모피어스 질문에 이 책을 읽는 순간, 우리는 이미 빨간 알약을 선택한 셈이다. 이제 매트릭스를 벗어나 현실에서 맞서는 수밖에 없다 ■

 

   

88만원세대절망의세대에쓰는희망의경제학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제일반 > 경제학일반
지은이 우석훈 (레디앙,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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