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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내가 읽은책

시가 무엇이기에 그토록 사랑했을까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

by 영글음 2010. 8. 17.

“내 보잘것없는 시가 민중에게 칼이 되고 손수건이 되고, 빵을 위한 투쟁의 무기가 되기를 열망한다. (본문 중)"

「스무 편의 사랑노래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통해 지금도 전 세계 젊은이들의 애간장을 녹이고 있는 시인. 스페인 내전과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칠십 평생 현실을 비판하고 사랑하고 투쟁했던 시인. 그래서 행복했던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

그가 쓴 자서전 「사랑하고 노래하고 투쟁하다」에는 여자를 사랑하고 민중과 평화, 평등 그 중에서도 시(時)를 가장 사랑했던 그의 일생과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세상을 뜨기 2년 전부터 집필하다가 그가 죽은 뒤 유족이 발간한 책이다.



자서전은 칠레 자연과 자란 유년기부터 시작해 전반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따르고 중반 이후에는 그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칠순 노인이 삶을 회고하며 무용담을 들려주듯 때로는 어깨를 으쓱이며 자랑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네루다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피델 카스트로, 피카소, 체 게바라, 아옌데 등 남미 현대사에서 좌파적 진보 성향을 가진 혹은 민중혁명을 꿈꾸었던 굵직한 역사적 인물과 만나는 특권도 누릴 수 있다.

네루다에게 시는 삶의 전부였다. 또한 세상과 소통하는 원동력이었다. “리얼리스트가 죽은 시인은 죽은 시인,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도 죽은 시인”이라고 외치던 네루다의 자서전을 읽다 보면 과연 시란 무엇인가, 시를 넘어 소설, 그림 등 문학예술이 주는 시대적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생을 마감하기 일주일 전, 네루다의 마지막 회고는 아옌데가 피노체트 군사정권에 정복당한 직후까지 이어진다. 자서전은 분노와 격정에 휩싸인 감정을 억누르고 “저들은 또다시 치레를 배신했다”는 문구로 마감한다. 독자 역시 감정의 정리 없이 네루다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음에도 책을 덮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에 쌓일지도 모르겠다. ‘가난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린 발파라이소
*’라는 그의 표현처럼 그의 회고는 폭포수가 쏟아지듯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


*발파라이소: 네루다가 유년시절을 보낸 칠레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