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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내가 읽은책

지식인? 지식in? 지식인 사회의 현 주소를 말하다

by 영글음 2010. 9. 8.


조금 우중충한 청록색 표지의 책을 집어 들었다. 명조체로 <민주화 20, 지식인의 죽음>이란 제목이 박혀 있다. 그런데 지식인이 ‘지식
’으로 읽히는 게 아니라 ‘지식in'으로 보인다. 어디선가 “거봐, 지식인은 죽었지?”라고 확신하며 묻는 것 같다.  
표면상으로 민주화가 된지 20, 사회 곳곳에서는 국민이 주인이 된 사회와는 거리가 먼 일들이 만연하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대한민국의 외관은 화려하게 변했으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변색하거나 후퇴하는 일도 많다. 지식인의 죽음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지식인, 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모습을 바꾸다


 

이 책은 경향신문에 87 6월 민주항쟁 20년을 기념하며 16차 동안 특별기획으로 지면에 게재한 기사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일간지에서는 다소 다루기 힘들었던 참신한 기획과 방대한 심층취재, 다양한 보도기법 등으로 각종 수상도 하고, 지식인 사회에 크고 작은 파장을 일으켰다고 한다지식인의 범위를 학계 즉 대학교수로만 묶은 점이 아쉽지만 심층 취재를 위해 타깃을 잡아야 했을 것이다. 지식인의 개념과 기준이 개인마다 조금씩 다를 테지만 대학교수가 지식인이라는 것은 전반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사실이니까 말이다. 
 

책은 오늘날 지식인의 풍경과 위상에서 시작해 지식인의 위기가 무엇과 맞물려 있는지 풀어내고 있다. 이를테면 정치권력, 경제권력, 문화권력 등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변모하고 있는지 등등이다. 각 장마다 외부기고자의 칼럼이 실려 있는데 문체가 달라서 그런지 읽으면서 흐름이 약간씩 끊기는 점을 감안해야 했다.   

 

지식인에서 지식중개인으로


 

책에서 말하는 지식인의 죽음은 지식인의 성격이 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비판적, 저항적 지식인이 오늘날에는 시장 친화적인 지식인으로 혹은 그저 지식을 담고 있는 사람으로 말이다. 달리 말하면 지식인이 사회 속에서 제 역할을 잘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글이다. 뒷부분에 실린 좌담에서 장석만 충간문화연구소장은 이런  표현을 한다.

"지식인은 지식 중개인으로, 대학은 상품거래소로, 교수는 지식 세일즈맨으로"

 

다른 어떤 말보다 현재 지식인과 대학, 교수의 모습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문구가 아닐까 싶다. 지식을 생산하는자보다는 지식을 소유하는 자가 우선인 시대, 지식보다는 정보가 더 각광받는 시대가 아니던가! 그러나 남들보다 더 많이 배워 지식을 쌓은 자는 사회현상에 대한 명석한 판단으로 앞길을 제시하고 세계적인 흐름을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지 필터링하는 것이 역할이라 생각한다. 지식인의 모습이 그저 지식중개인으로 바뀌어가는 것은 정말이지 안타까운 일이다.  

 


미국 유학 중인 우리 가족에게 고민을 던지다


 

한국 대학교수 중 84% 가량이(2007, 6월 기준) 미국 유학파라고 한다. 서울대 경제학과의 경우 34명 중 31명이 미국에서 학위를 받았다. 실로 어마어마한 수치이다. 그들이 미국에서 수학과 통계학을 많이 쓰는 시장주의를 배우고 그 영향력이 한국사회까지 퍼지는 건 당연지사. 한국은 미국의 지식에 종속되어 있는 꼴이다.

 

이 책이 유독 가슴에 와 닿았던 건 같이 사는 남자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공부 중이기 때문이다.  전공은 경제학. 그는 제한된 자원을 어떻게 나누어야 최대의 사람이 만족할 수 있을까를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갖다 보니 남편도 어쩔 수 없이 미국행을 선택해야 했다. 결국 우리 역시 미국의 영향력을 높이는데 일조한 꼴이 되었다. 남편은 한창 공부 중이라 이 책을 아직 못 읽었다. 훗날 기회가 되면 꼭 읽히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배운 것을 최대한 아름답게 쓰고 지식인 다운 지식인이 되기 위해 어째야 할 것인가 등등에 대하여. 우선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