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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내가 읽은책

고등학교 때 봤으면 더 좋았을 경제사상 입문서

by 영글음 2010. 9. 3.

경제를 다룬 책이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 걸까? 그래프 하나 없이, 도표도 없이! 함께 사는 남자가 경제학을 공부하는 덕에 몇 번 책을 들여다 보긴 했으나 온갖 수식에 꼬불꼬불 영어로 되어 있어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경제학=어렵고 알쏭달쏭한 것이라는 공식을 머리에 넣으려고 할 무렵, 샛별처럼 <죽은 경제학자의 살이 있는 아이디어>를 만났다. 어제 첫 장을 열고 오늘 마지막 장을 덮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 읽는 내내 포복절도했다.


 

이 책을 쓴 저자 토드 부크홀츠 역시 경제학자이다. 토드는 자유방임주의를 주창했던 애덤 스미스부터 시작해 맬서스, 리카도, , 마르크스, 케인스 등 과거 역사에서는 물론 오늘의 경제,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경제학자와 그들의 경제사상을 독자에게 소개하고 있다. 단순히 여러 사상의 나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각 개인이 어디서 태어나 어떤 영향을 받으며 사상을 쌓게 되었는지, 후대의 새로운 사상에 의해 어떻게 공격을 받았는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늘까지 거슬러 올라온다.    

 

토드가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던 시절, 학생들은 그에게 최우수강의상을 선사했다.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 상이 결코 넘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생생한 비유법과 예시는 경제의 이해를 도울 뿐 아니라 손에서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만든다. 문장마다 독창적인 유머가 한껏 묻어난다.

 

한 예로 그는 공리주의자 제레미 벤덤의 이론에 대해 그 내용은 얼핏 보기에 미국에 수출되는 일제 가전제품에 붙은 취급설명서만큼이나 해독이 어렵다. 차라리 일어로 쓰면 영어보다 더 아름답기라도 할 텐데.”라는 말로 시작한다. 웃다 보면 다음 내용이 저절로 궁금해진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애덤 스미스를 약간 오해하고 있었다. 국부론, 보이지 않는 손, 자유방임주의 등 스미스와 관련되어 아는 것이라고는 몇 단어밖에 없었으면서도 그를 비인간적인 시장만능주의자, 다시 말하자면 신자유주의의 기둥을 떠받치고 있는 경제학자라 생각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자유무역과 상업활동의 동기를 찬양하긴 했지만 그 혜택이 왕이나 귀족들보다 일반 국민들에게 돌아가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한다. 도덕과 양심에 바탕을 둔 시장주의자라고나 할까? <국부론>을 읽어볼까 하는 호기심이 슬며시 고개를 들고 있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이 있는 아이디어>는 지속되는 경제불황기를 살아가야 하는 내 이웃,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은데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특히, 시험 볼 때마다 고개를 천장으로 향한 채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어쩌고, 공리주의가 저쩌고,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어쩌고 저쩌고 등등을 달달 외워야 하는 고등학생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경제가 이렇게 재미있는 건 줄 그들이 안다면 공부가 한결 쉬워질 것 같다. ■


※ 번역을 꽤 잘한 책이라 생각한다. 번역자 이승환 씨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