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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내가 읽은책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시인 그리고 시를 사랑한 소년

by 영글음 2010. 7. 6.

시 한편으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러본 적이 있는가? 갖은 은유법, 직유법으로 상대방 마음의 빗장을 풀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는가? 있다면 당신은 이미 시인이다. 소설 속 주인공 마리오 역시 달콤한 시적 언어로 한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니 그도 시인이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칠레 민중시인 네루다와 우편배달부 마리오의 우정 그리고 시를 향한 사랑을 그린 소설이다. 주민 대부분이 어부로 사는 작은 바닷가마을, 17세 마리오가 이슬라 네그라에 사는 네루다에게만 우편물을 배달하는 우편배달부가 되면서 이야기는 펼쳐진다. 5년 전, 배낭여행을 할 적에 바다가 손짓하는 이슬라 네그라의 네루다 생가를 가본 적이 있어서 그런지 이야기가 전개되는 장면 하나, 하나가 머릿속에 그림처럼 그려졌다.



마리오가 네루다의 시에 반하고, 한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의 시를 모방하면서
둘 사이에는 끈끈한 관계가 만들어진다. 그들의 대화를 엿보고 있노라면 시의 아름다움과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아 시를 제대로 모르고 살아온 나날에 얼굴이 벌게지기까지 한다.

이야기가 짧아 몇 시간 만에 금세 읽었지만 여운이 오래가는 까닭은 해학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묘사법이 한 몫 했을 것이다. 마리오가 주점 딸 베아트리스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많은데 결코 노골적인 표현을 쓰지 않고도 사람의 애간장을 살살 녹게 하는 표현들 때문에 밑줄을 그어대느라 손에서 펜을 놓을 수가 없었다. 재치 만발한 대사는 또 얼마나 많은지, 읽는 내내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계속 그러면 일주일 안에 자네를 나무 조끼 속에 집어넣게 될 거야. 사람들은 정겹게도 그걸 ‘관’이라고 부르지. 마리오, 화물 열차보다도 더 긴 대화를 나누었군. 잘 가게” (85p)

베아트리스를 향한 괴로운 마음을 끝없이 토로하는 마리오에게 네루다가 한 말이다. 간단하게 “너 계속 투정하면 죽어”라고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는 상징과 은유를 적절히 써가며 주인공의 입을 제대로 막고 나설 작정을 한다. 물론, 마리오의 와인 때문에 열차보다 더 긴 대화가 이어졌지만. 다른 문장을 또 살펴볼까?

마리오의 오묘한 소리를 남행 열차의 기적 소리와 혼동한 개들은 알 수 없는 협약이라도 맺은 듯 일제히 달을 향해 짖어댔다. (134p)

마리오가 베아트리스와 사랑을 나눌 때 내던 소리에 개들이 짖어대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이다. 사랑하는 남녀의 관계가 최절정에 달했을 때 달을 보고 짖는 개의 소리가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는 모습을 생각하면 애틋하면서도 매우 우습다. 이런 점이 바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가 집권하게 된 아옌데 정권. 이후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의해 무너지는 숨 가쁜 칠레 현대사의 파란만장한 현실을 조금 비껴가면 사람을 사랑하고 유머가 넘치는 네루다와 가슴이 따뜻한 마리오가 있다. 네루다가 죽고 그를 추앙했던 마리오는 어디론가 끌려가 행방불명이 된다는 비극적 결말에 다소 마음이 허해지지만 무거운 현실과 맞닿아 있는 따뜻한 일상을 아름답게 쓴 책이다. ■

 

[네루다와 우편배달부]의 배경이 되는 이슬라 네그라, 네루다 생가의 모습, 200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