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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내가 읽은책

만담꾼 성석제의 참 재미있는 소설 [조동관 약전]

by 영글음 2011. 5. 6.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죽음을 면하기 위해 왕에게 밤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어야 해던 세헤라자드. 만약 왕이 한국에 있었다면 나는 기꺼이 세헤라자드 대신 소설가 성석제를 추천할 것이다. 성석제를 왕비로 삼지는 못하겠지만 한번 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다면 여자에 대한 불신, 보복 따윈 개나 물어가라고 것이 분명하다! 성석제는 소설가이기 전에 재담꾼이었다.

 


그의 단편모음집인 [조동관 약전] 마디로 평하면 유쾌하고 재미가 뚝뚝 떨어지는 인데 이걸로 수식을 끝내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책은 미친 사람처럼 혼자 몰래 낄낄거리다가 어느 부분에선 망치로 두더지 머리를 한방에 때리듯 통쾌하고, 어쩔 비실 세어 나오는 웃음을 금세 집어 넣어야 하는 오묘함을 두루 느낄 있다. 모든 성석제 익살과 능청, 유머와 해학 덕택이다.

 

사실, 그의 단편은 시시껄렁한 이야기 모음이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라는 뜻이다. 냇가에서 아낙들이 빨래 방망이를 두드리며 풀어 놓는 이야기, 예를 들면 뒷집 순자에 아버지 있잖아. 양반네 고종사촌의 육촌네 옆집 사는 사람의 마누라가 세상에 그렇고 저랬다더라.”하는 식의 이야기들이다. 우리의 삶과는 하등 상관 없는 이야기인데 신기하게도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손에 자석이 붙은 절로 다음 장을 넘기게 되며, 편이 끝나면 다음 이야기까지 궁금증이 밀려온다.

 

본명은 동관이지만 하도 개망나니 짓을 하고 돌아다녀 동네에서 똥깐이라 불리는 청년백수건달의 일대기 (조동관 약전) 시골 깡패가 암으로 입원하여 병원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이야기 (이인실), 고수는 고수인데 내기바둑으로 고수가 되지 못한 남자의 허망한 이야기 (고수), 만나는 내내 속옷 거들을 입고 한번도 자유롭게 육체를 허락하지 않았던 여자와의 연애 비슷한 이야기 (칠십년대식 철갑) 허무맹랑한 단편 9편이 [조동관 약전] 실려 있다.

 

혹자는 그의 소설이 가볍다고 하지만 보기에 성석제의 소설은 결코 가볍지 않다. 뒤편에 붙은 이광호 해설의 표현대로 삶을 짓누르는 공허함의 묵직한 가벼움 (p272)” 것이다. 같은 시기에 나온 여느 소설처럼 강한 시대정신이 묻어 있다거나 사회상을 품고 있지는 않지만 그의 소설에는 통속에 담긴 인간의 어쩔 없는 웃기고 때론 지랄 맞은 본성, 삶의 본질 같은 느낄 있다. 무엇보다 진짜 재미있다는 , 이것 하나로도 다른 설명은 굳이 필요 없을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