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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내가 읽은책

골 때리는데(?) 참 재미있는 소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by 영글음 2011. 4. 6.

제목도 범상치 않은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소설이라면 저마다 장르란 게 있는데 이 소설은 뭐라 이름을 붙여야 할까. 로맨스 소설? 정치소설? 가족소설? 뭐 아무래도 좋다. 이 모든 이야기가 톱니바퀴 맞물려 돌아가듯 잘 버무려져 있는데다가 재미까지 더해져 정신 없이 읽어 내려가게 하니 장르쯤이야 몰라도 좋다.

 

작가 주노 디아스는 등단한지 11년 만에 처음 내놓은 이 장편 소설로 퓰리처상, 미국비평가협회상을 비롯 여러 상을 탔단다. 당연하게 이 소설은 아마존, 뉴욕타임즈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28개국에 판권이 팔렸다고 한다. 대체 어떤 소설이길래 책 한 권으로 이런 영광을 거머쥘 수 있단 말인가! 읽기 전부터 궁금증이 하늘을 찔러댔다.

 

이 소설은 분명 오스카 와오의 눈물겨운 사랑쟁탈기이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태어나 미국 뉴저지에서 자란 그는 어릴 적 귀여운 외모를 뒤로 하고 자라면서 100kg가 넘는 거구가 된데다가SF, 각종 판타지에 빠져 변변한 연애도 못해본 남자다. 하지만 늘 어떤 여자를 마음에 두고 있으며 사랑하고 싶은 욕구는 누구보다 강하다. 우여곡절 끝에 사랑하는 여인을 만났으나 무서운(?) 애인이 있는 상태. 그러나 거기서 물러설 오스카가 아니다. 결과를 알면서도 정면으로 맞서다 결국 오스카는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만다.


오스카의 이 저주스러운 삶은 가족 대대로 이어 내려져 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 의사였던 할아버지 아벨라르부터 시작해 어머니 벨리, 누나 롤라 그리고 오스카에게까지 내려온 이 가족의 저주를 작가는 푸쿠라 명했다. 도미니카 발음으로 저주가 바로 푸쿠라 한다. 가족에게 푸쿠가 내린 것은 바로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자 트루히요 때문이다. 32년 동안 가공할만한 폭정을 휘두르며 온 나라의 예쁜 여자란 여자는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했던 독재자 탓에 가문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소설을 이끌고 있는 화자는 특이하게도 롤라의남자친구 유니오르이다. 가족의 이야기에 깊이 관여하지도 않는 다소 유니오르를 화자로 두면서 저자는 가문의 저주를 3 입장에서 덤덤하게 바라보는 효과를 꾀한 하다. 때론 쿨하게, 때론 정곡을 찌르는 노련한 문장으로 독자에게 거부할 수 없는 세계를 선보인다. 유니오르는 작가 자신인 셈이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은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을 닮은 구석이 있다. 이 책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나 오스카 모두 현실에서는 부적응자이지만 본심은 누구보다 순수하다는 공통점이 있고 소설 전반에 흐르는 냉소적이면서도 위트 넘치는 대사들 역시 그렇다.

 

또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호세이니의 소설 [천개의 태양]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천개의 태양]을 통해 아프간 사회와 여성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처럼 [오스카……]를 읽고 나니 이름도 생소했던 도미니카 공화국의 뼈아픈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책을 정치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중간중간 여러 장치를 통해 (이를테면 논문 같이 빼곡한 주석) 작가는 분명 독재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으니 이 정도 감상이라면 작가가 만족해 하지 않을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