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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이야기/내가 읽은책

나는 과연 눈을 뜨고 살아 가는가 [눈 먼 자들의 도시]

by 영글음 2011. 7. 7.

눈을 감는다. 손을 뻗으면 바로 전까지 눈 앞에 있었던 컴퓨터 자판기가 있다. 문서가 열려 있다면 눈 감고 글자를 치는 일쯤이야 대수롭지 않다. 그러나 그 다음은? 의자에서 일어나 기억을 더듬으며 가구를 피해 현관까지 간 그 다음은? 내가 사는 주택단지 밖까지라도 두 발을 온전히 내디딜 수 있을까? 귀로 차를 피하고 손으로 땅을 더듬거리며……

 

뱃속에 있는 둘째 정기검진 차 병원 가는 길, 오래 기다릴 것을 예상하고 가볍게 소설이나 읽자하여 가방 속에 넣은 책, [눈먼 자들의 도시]. 대기 시간 중 짬짬이 읽다가 어느새 책에 코를 박고 몰입하는 나를 발견한다. 간호사가 혈압을 체크하고 잠시 후 다시 오겠다고 하면 바로 책을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다음날 끝을 봐버렸다. 소감? 충격이다.     

 

 

어느 날 운전을 하던 한 남자가 갑자기 눈이 멀고, 그 증상이 순식간에 전염병처럼 퍼져 온 세상이 눈 먼자들로 가득 찬다는 설정 자체가 독특하다. 단 한 사람, 안과 의사의 부인만 눈이 보인다는 것 또한 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눈 먼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독자에게 전하는 암묵적 화자가 되어준다. 

눈이 안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은 그야말로 생지옥이다. 먹을 것을 쉽게 찾을 수 없고, 먹었던 것을 편하게 배설할 수 없다는 게 얼마나 고통인지 소설은 생생히 묘사한다. 비극 중 비극은 눈 먼자들의 사회에서도 조금 더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관계가 만들어진다는 것. 무기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 이뤄지는 복종과 폭력, 억압의 구조를 통해 저자는 인간 본성의 날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 같다. 그 과정은 처참하고 강렬하여 책장을 덮은 뒤에도 오랜 여운을 남긴다.    

 

눈 먼자보다 눈 뜬 자들로 가득한 세상, 우리는 정말 눈을 제대로 뜨고는 있는 것일까. 앞을 본다 뿐이지 좋은 집과 좋은 차에 눈이 멀고, 자식 교육에 눈이 멀고, 경쟁에 눈이 먼 우리가 과연 눈을 뜨고 산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눈을 뜨고 있어도 멀게끔 조장하는 사회, 소설 속 눈 먼자들 사이에 생겼던 권력과 폭력이 우리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는데 무얼 근거로 눈을 떴다고 확신할 수 있나이 책은 눈 먼 자들이 가득한 도시에 사는 눈 뜬자들을 향한 외침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눈이 먼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말이다. ■


눈먼자들의도시
카테고리 소설 > 기타나라소설 > 스페인(라틴)소설
지은이 주제 사라마구 (해냄출판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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