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저런 이야기/짧은 생각

“전 빠른 77인데요” 한국사회에서 나이가 갖는 의미

영글음 2010. 10. 20. 05:30
오랫동안사람을만나면나이부터묻는버릇이있었다. 학번이깡패, 동기사랑나라사랑같은학습효과(?) 덕택인지어떤모임이든사람은선배, 쟤는후배이런식의분류가끝나야마음이편했다. 나와나이가같으면대뜸놓고지내자하며친구를맺는다. 상황에따라 76년생까지도영역을넓힌다. 그때사용되는논리는? 나는빠른 77이라지!



한국사회에서나이는중요하다. 학창시절엔학번도하는데사회에서만나는모임은대개나이에따라관계가일목요연하게정리되고호칭이정해진다. 같은학교를나오지않았어도선배가되고후배도되며남자들끼리는형님, 아우여자들끼리는언니, 동생이가능해지는것도나이에따라서이다. 그리고관계맺기가끝나면어떻게대할지방식이결정된다. 하하호호웃는속에서도 '선배는하늘, 후배는'이라는공식은사회곳곳에뿌리를펼치고있다.

미국에온지 1년하고 2개월되었다. 영어공부를한다는핑계로미국드라마를하나봤다.  <위기의주부들>. 한국에서도시즌 7방영되고있는인기프로그램이다. 시즌 1 회를보았을친구사이로나오는주부들을보며무척의아해했다. 친구인데나이차이가심하군. 배우를것이지. 대학친구일까? 고등학교친구일까? , 그런데그녀들이동네이웃이라는것을알았을 '친구=동갑내기'로만인식하고있던갇힌사고를발견하고는충격을받았다.

서른중반, 이제와생각해보니내가나이를꼼꼼히따지고같은나이만친구로생각하는것은결국위계질서를중시하는서열문화에익숙했기때문이아닐까싶다. 선배보다는친구가편하고후배는내가만만히봐도만한존재. 차이가그리크길래옛날엔‘78년생말띠애들드세다면서후배다스리기의애로사항을토로하기도했으니, 지금들으면잠자던사자가코털뽑고, 지렁이가주름피며웃을이야기다

윗사람을
공경하고존중하는것은예의다. 하지만그것이지나쳐말을못한다거나자유롭게생각을나눌없다면우리네세상살이는녹슨쇠붙이가기계의 속도를 늦추거나 멈추게하는 것처럼빡빡하고경직될것이다.  한국사회가장유유서, 유교문화의영향아래있다지만조선시대만해도스승아래나이가천차만별인제자들이모여치열한토론을벌이고우정을쌓은보면지금이라도얼마든지나이가다양한친구를사귈있지 않을까?

그런점에서블로그활동은매력적이다. 트위터나페이스북같은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시대의강자로떠오르고있지만나는그것보다블로그가좋다. 블로거들삶의여정이깃든소박한글을통해배우는많으니까. 내가가야길을먼저사람들, 하고싶었으나없었던것을하고있는사람들에게서시행착오의경험을 배우고교훈을얻는다. 나이는상관없다. 직접만났다면고개숙여인사하고끝났거나어린애라치부하여돌아보지도않았을사람들과블로그를통해 의견을 나누며 친구가 된다. 

아직도사람을만나면사람은살일까나는무지궁금하다. 하지만앞으로는의식적으로묻지않으련다. 사람이어떤가치관을가지고있으며사회를보는눈이어떤지, 그런것들을먼저, 나눌있으면실컷나누며친구가되었으면좋겠다. 나이를잊자는, 굳이빠른자를붙여가며나이를올리는것도이젠끝이라는, 오늘의결론이다. 윗사람들에게도 그렇지만 아랫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다가가볼 것이다. ■


글은 시사인 <157.158호>와 <160호>에 게제된 칼럼을 읽고 잡동사니 생각을 정리하여 쓴 글입니다. 잡지에 실린 제목과 인터넷용 제목이 조금 다르네요. 링크 걸어둡니다.

시사인 <157.158> 9월 신학기제가 좋다 - 글: 최내현 (출판인)
시사인 <160> 아직도 나이·학번을 따지십니까? - 글: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